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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literature

<안티고네>-소포클레스

by 대담한도약 202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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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 

 

 <안티고네>는 대부분 남성이 주역을 맡는 고대 그리스극의 특성 상 여성이 그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굉장히 희소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은 안티고네가 아닌 테바이의 크레온 왕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에는 그러한 가치에 한계가 없진 않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의 딸로 오이디푸스가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와 자신의 눈을 잃고서 추방당하였을 때 함께 테바이를 떠나 죽을 때까지 그의 동반자 역할을 해준 자이다. 생전 그녀의 전반적인 경위들을 살펴보면 보면 그녀는 가족에 대한 갸륵한 마음을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게는 두 명의 오빠와 한 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첫째인 에테오클레스, 둘째 폴리네이케스가 오빠이며 막내 이스메네가 여동생이다. 아래 관계도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안티고네의 가족 관계도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오이디푸스가 떠난 후 왕좌를 두고 싸움을 벌였는데, 폴리네이케스는 형 에테오클레스에 의해 테바이에서 쫒겨나게 되고 왕좌를 다시 빼앗기 위해 아르고스의 군대를 끌고와 테바이를 침략한다. 그리고 그런 동생으로부터 에테오클레스는 테바이를 수호한다. 그 과정에서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사망하게 되는데 결국 그나마 가장 혈육에 가까운 크레온이 왕좌를 뒤따라 받게 된다. 크레온은 테바이를 지켜낸 에테오클레스를 영웅으로, 폴리네이케스를 역적으로 여겨 폴리네이케스는 새와 들짐승이 시체를 뜯어먹도록 들판에 버려둔 채 아무도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하지 못하게 경비원을 세워둔다.

 

아닌게 아니라 불복종의 대가는 죽음이오!

 

 잠시 후 경비원이 허겁지겁 달려와 쥐도 새도 모르게 시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크레온에게 전해주어 그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 후 안티고네가 폴리네이케스를 매장하고 있는 모습이 추가로 발각되어 경비원이 그녀를 크레온 앞에 끌고 오는데 그녀는 너무나도 당당하다.

 

내 소행임을 시인해요. 부인하지 않겠어요.
내게 그런 포고령을 내린 것은 제우스도 아니었으며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법을 세우지 않았으니까요.

 

 

그녀는 왕의 포고령 따위는 신의 불문율(不文律)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땅히 지켜야할 것을 지켰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죽음보다 두렵다는 안티고네. 그녀는 혈족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크레온은 테바이를 침략한 더러운 폴리네이케스를 테바이를 수호한 에테오클레스와 동일시하는 것을 역겨워한다. 하지만 안티고네에게 그 둘은 다름없는 그녀의 오빠들이다. 

 

 안티고네의 이러한 관념과는 달리 이스메네는 왕의 포고령을 더욱 무서워하는 작자이다. 안티고네는 그녀에게 시신을 함께 매장하자고 권유하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죄책감에 이스메네는 궁궐로 쫒아와 함께 죽어 고인을 섬기겠다고 하는데, 크레온은 그녀 또한 미쳤다고 생각할 뿐 이스메네를 안티고네와 동일시여기지 않는다.

 

 이 후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이 찾아와 테바이 국민들과 자신의 생각을 소신있게 말한다.

 

친오라비가 피비린내나는 전장에서 죽었는데
날고기를 먹는 짐승과 새 떼가 먹어치우지 못하도록 묻어주었으니
그녀야 말로 황금같은 명예를 받아야하지 않겠는가

 

 

 하이몬은 크레온의 포고령이 신들의 명예를 짓밟는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크레온은 심히 화를 내었고 그에 분노한 하이몬은 정신나간 작자라며 그대로 궁에서 뛰쳐나간다. 크레온은 지하의 신을 두려워하여 결국 안티고네를 죽이지 않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컴컴한 석굴 속에 그녀를 가둬두도록 한다. 

 

 이 후 테바이의 눈 먼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가 등장하는데, 이 작자는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등장하였었다. 예언자는 크레온에게 신탁을 전해주는 새 떼가 인간의 고기를 먹어 더럽혀졌다고 말한다. 크레온은 테이레시아스가 사익을 위해 꾸며진 말을 내뱉는다고 한다. 그런 크레온에게 예언자는 몇 일 안되어 그의 혈육 한 명이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곤 떠난다. 크레온은 그녀의 예언은 언제나 잘 들어맞았기에 두려워 석굴에 있는 안티고네를 풀어주기로 한다.

 

 석굴에선 하이몬이 목매달아 죽은 안티고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애통한 울부짖음이 들려왔고 크레온이 그 곳에 다다랐을 때 하이몬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칼을 꺼내 자신의 옆구리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렇게 예언은 이루어졌다. 이 소식을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에게 전해주는 사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하신다면 집에 큰 재물을 쌓아두고 왕처럼 화려하게 살아보세요. 하지만 거기에 아무런 낙이 없다면, 행복이 아닌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위해 나는 동전 한 푼도 지불하지 않을래요.

 

 크레온이 아들을 잃은 채 테바이로 돌아가자 아들을 잃은 슬픔에 에우리디케가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크레온은 산송장과도 같은 자신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달라고 한다. 

 

오게 하라 오게 하라! 내 운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나타나
나에게 마지막 날을 가져다주게 하라!

 

 

지혜야 말로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그리고 신들에 대한 경의는 모독되어서는 안되는 법. 오만한 자들의 큰소리는 그 벌로 큰 타격을 입게 되어, 늘그막에 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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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를 보고 있노라면 예언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은 언제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크레온이 마냥 부정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조국의 영웅과 적을 동일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친오라비의 시신을 묻어주는 것만큼이나 올바른 것이다. 하지만 죽은 망자를 위한 최소한의 예우는 언제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왕의 포고령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더욱 절대적인 것은 신에 대한 존경이다. 정의 또한 신의 불문율 아래에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자연법과 실정법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뜨겁다. 대개 자연법과 실정법의 방향이 동일한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고 난감한 대립을 하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 현대와 같이 법실정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선 신의 불문율은 모독되기도 한다. 그러나 에언자의 저주도, 신의 분노도 존재하지 않는다.

 

 안티고네는 숭고한 선택을 하였고, 이스메네는 그러지 못하였다. 과거 신에 대한 존경이 만연할 때엔 자연법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효력을 지녔다. 현대에 들어선 안티고네를 타협할 줄 모르는 작자로, 이스메네를 융통성있고 신중한 작자로 구별될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다. 소포클레스가 본다면 아마 신의 모독됨이 만연한 현대를 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안티고네> 작 중에서 신의 불문율을 지키는 것을 코로스는 지혜라고 말한다. 과연 법실정주의 앞에서도 코로스는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수천년에 걸쳐서도 기리기리 전해지는 이러한 비극에도 불과하고 우린 안티고네가 아닌 이스메네로 살아가고 있는 진정한 비극을 겪고 있다.

 

<안티고네>는 어쩌면 안티고네의 죽음과 크레온의 재앙을 비극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안티고네와 같은 자를 고매한 자로 숭고하여야하는 우리의 상황을 비극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안티고네는 비록 고매한 안티고네가 비극을 맞게 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오히려 신을 모독한 크레온이다. 「시학」에 따르면 어리석은 크레온 왕이 비극을 이끌어가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완벽히 훌륭한 비극이라고 볼 순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러한 전개를 선택한 소포클레스는 아마 우리는 대부분 크레온과 이스메네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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