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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침략자> (散歩する侵略者, 2017) - 구로사와 기요시 (인류는 살아남아도 되는 존재인가.)

by 대담한도약 2023.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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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침략자(2017) - 구로사와 기요시 포스터

 

 현재 일본 영화의 거장을 뽑으라고 한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더불어 구로사와 기요시 또한 절대 빠지지 않을 이름일 것이다. 그의 필모는 특히 한국에선 <큐어>와 더불어 <도쿄 소나타>, <스파이의 아내> 등의 작품이 유명한데 이번에 포스팅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산책하는 침략자>(2017)는 독특하게도 SF적 소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침체되고 어두운 분위기를 잘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적 특성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어쨌든 확실한 건 이 작품 또한 기요시 감독 고유의 인간 성찰적 특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타 작품과 비교를 위해서라도 충분히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위 포스터에 적힌 저 구불구불한 문구와 글꼴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우선 작품의 시놉시스는 무척 흥미롭다.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황당한 남편수상한 사람들……마침내 침략이 시작된다!

지구침략을 목표로 인간의 몸에 침투한 외계인이 인간의 ‘개념’을 수집하기 시작하고 ‘개념’을 수집 당한 인간은 공백 상태가 되어 간다. 어느 날 행방불명 됐던 남편 신지(마츠다 류헤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은 지구를 침략하러 온 외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아내(나가사와 마사미)를 당황케 한다. 신지는 매일 어딘가로 산책을 나가고, 마을에서는 어느 한 가족이 참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미스터리 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데……세상이 끝나는 날 신지를 위한 나루미의 마지막 선택이 시작된다.

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여기서 알 수 있는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첫째, 과연 개념을 수집한 외계인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할 것인가? 둘째, 개념을 상실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갈 것인가? 가 될 것이다. 하나의 개념을 상실한다는 것은 하나의 메타철학적 지식을 상실한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유추해보자면 <산책하는 침략자>의 핵심 목표는 인간의 인지사고를 해부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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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주의)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 서로 다른 성질의 개념을 수집한 두 가이드 집단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간섭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개념의 영역을 인위적으로 앗아가는 외계인의 능력이다. 그래서 개념을 새롭게 습득한 외계인이 지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게 변화하는지가 중요한데 가이드를 중심으로 크게 아내인 마사미네와 잡지 기자인 사쿠라이네, 이렇게 두 부류 집단을 나누어서 인물들을 분석하면 재밌다.

 

 먼저 나루미네의 경우 남편인 카세 신지가 개념을 빼앗기기 전에 부부 생활에 소홀하고 심지어 불륜까지 저지른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계인이 신체를 점령한 후로 상당히 순애보스럽고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 인물이 습득한 개념은 순서대로 가족, 소유, 일, 사랑이 된다. 이 네 가지 개념은 부부가 하나의 가정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로 '일'의 경우엔 다른 세가지 개념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을 지 몰라도 결국 일 또한 특정 집단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생계벌이를 위해 타인에게 개인을 맞춰가는 것이라고 정의을 접근한다면 딱히 고립된 개념은 아닌 듯 하다.

 

 다음으로 사쿠라이네의 경우인데 이 인물은 여고생인 아키라와 남고생인 아마노의 가이드이다. 아키라와 아마노는 신지의 경우와 다르게 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개념들을 습득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역시 '자신'이란 개념과 '장애물', '민폐'에 대한 개념을 습득할 때였는데 그래서 그럴까 그들은 지구 침략에 대한 확신을 더욱 견고히 하게 된 것 같다. 여기서 '자신'에 대한 개념을 습득하는 장면을 보면 마치 기요시 감독의 97년 작 <큐어>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또 한번 더 심층적으로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다만 <큐어>와 달리 <산책하는 침략자>는 사회비판적인 관점보단 '사랑'에 대한 가치와 서로를 대적하게 만드는 사회적 개념들을 시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룬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철학으로 다가가기 보단 전쟁과 다툼, 배척이 어떤 개념으로 인해 생겨나는지를 다양한 장면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장면들을 보면 나루미네와 달리 인류애가 느껴지는 장면을 발견할 수가 없는데 가령 아키라가 마사미의 자동차에 치여 사망했을 때의 장면에서도 대중들은 아키라에게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않고 휴대폰으로 그 장면을 촬영하고만 있다. 그 밖에도 아키라가 벌인 사고 현장을 지키는 경찰, 아키라가 감금된 병원을 지키는 가드, 그들을 추적하는 기관의 요원들을 관찰하고 진행시키는 영화적 흐름을 보면 감독은 그들의 장면에선 인위적으로 이타심과 같은 인류애가 발현되지 않을 상황만 부여시키고 반대로 서로 대치하고 배척하는 상황을 부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집단에서 벗어난 특이한 인물이 한명있는데 바로 신지에게 '소유'의 개념을 빼앗긴 마루오다. 마루오는 소유의 개념을 상실함으로서 대중들 앞에서 연설할 용기와 정의감이 생겨난 인물이다. 그래서 개념들은 각기 종류에 따라 인간에게 긍정 혹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작 중 가족, 사랑이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개념이라면 소유, 장애물, 민폐 등은 부정적 영향을 미친 개념이며 필자가 보았을 땐 일, 자신 등의 개념은 개인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립 정도로 판단하면 적합하지 않나 싶다.)

 

 

  • 기요시 감독의 작품에서 중요한 개념

 필자가 보았을 때 기요시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라는 개념이다. <큐어>의 경우 인생을 살아가며 사회적 불만을 필연적으로 축적시키고 억누른 개인의 내면을 조명하고 있으며 그들이 발현시키는 반사회적인 행동들과 살인이 어쩌면 마땅히 일어났을 만한 본성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관객은 <큐어>를 보고 내면에서 살인 충동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씁쓸함을 느끼지 않았는가. 우리는 여기서 왜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며 그런 불만들을 폭주시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성찰한다. 그 곳엔 '그럼에도' 라는 개인의 사정들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스파이의 아내>도 그러하다. 남편은 국가를 배반한 스파이지만 '그럼에도' 아내는 그런 남편 또한 자신의 배우자이자 사랑하는 이로 여겼기 때문에 오히려 남편에게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맹신할 수 없었던 일본 제국에게 어쩔 수 없이 충성해야 했던 국민들의 당대 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충성심에도 '그럼에도'라는 맹목적인 전제조건이 따랐다.

 

 <도쿄 소나타>의 경우 가족에 대한 불만이 구성원 개인들에게 각각 쌓여가지만 결국 엔딩에선 가족이란 이름으로 다시 뭉친다.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아내는 배우자이자 부모로서의 무게, 고립감을, 자식들은 각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환경에 불만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이 다시 되돌아 온 이유는 그러한 불만보다 더 우위에 있는 가족애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위 세 작품 중 그나마 <산책하는 침략자>와 주제적으로 맞닿아 있는 엔딩이 <도쿄 소나타>일 수 있겠다.

 

큐어 스틸컷

 

  • 만일 외계인의 가이드가 서로 뒤바뀌었다면?

 <산책하는 침략자>에선 '그럼에도'가 어디에 적용되었을까? 카세 신지의 아내인 나루미의 헌신적인 사랑과 간호를 보면 그녀는 마치 <스파이의 아내>에 등장하는 아내, 사토코의 맹목적인 사랑과 충성심을 보는 듯 하다. 또한 특종을 노리는 기자 사쿠라이가 외계인의 침략에 협력하고, 다시 인류에게 미련이 생기기를 왕복하는 것을 보면 그는 마치 <큐어>에 등장하는 인물들 마냥 어떠한 사회적 불만이 가득한 듯 한데 작 중 후반에 가볍게 언급되는 사쿠라이의 과거사를 보면 그는 업계에서도 큰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것과 더불어  이혼까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사쿠라이의 내면에 '사랑'이란 개념이 잊혀진지 꽤 오래된 것이다. 

 

 잠시 이 소주제에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큐어>의 이야기를 참고하겠다. <큐어>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은 무엇이었나? 바로 '사랑'이었다.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언급한 사랑에 대한 개념을 보면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자 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그렇지만 <큐어>의 주인공인 켄이치는 치매에 걸린 아내가 죽기만을 내심 고대하고 있지 않았는가. <큐어>에서 결핍된 것은 '사랑'이었고 '자신'이란 개념에서 파생된 이기심, 반발심은 작 중 파멸을 불러일으켰다. <큐어>에 사랑이 존재했더라면 결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다시 <산책하는 침략자>로 돌아와 그렇기에 내면에 사랑이 가득했던 나루미가 신지를 교화시킨 건 마땅한 결과였고 사랑이 결핍된 사쿠라이가 아키라, 아마노에게 동요한 것 또한 마땅한 결과였다. 만일 이 둘이 바뀌었다면 아마 아키라와 아마노는 사랑의 개념을 습득할 기회가 생겼을 지 모른다. 인간관계는 마치 알고리즘과 같다. 비슷한 사람들은 자석처럼 동류의 인간들을 끌어들인다.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 소감

- 소재 자체는 신박했으며 인간에 대한 접근은 기요시다웠다. 그와 더불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에게 접근하는 두 집단을 비추는 그 관조적 태도 또한 기요시스러워서 너무 좋았다. 다만 CG가 무척 유치했고 개인적으로는 깊이감이 떨어져서 실망 또한 많이 했던 영화다. 그럼에도 기요시 감독의 타 작품과 <산책하는 침략자>를 비교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나에겐 기요시 감독의 가치관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았나 싶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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