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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 마이크 니콜스 (인생을 방황 중인 청년들을 위한 영화)

by 대담한도약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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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1967) - 마이크 니콜스



영화 <졸업>은 1960년대 아메리카 뉴웨이브 시네마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고전 명작 중 하나이다. 아메리카 뉴웨이브는 당시 베트남 전쟁과 인권 운동 등 각기 방면에서 사회적으로 불안정했던 미국 사회의 영향으로 태어난 미국의 영화 사조인데 특징으로는 미국 당대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반사회적, 쾌락주의, 염세주의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 있다. 주로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나 <이지 라이더> 같은 히피, 갱스터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여기 속하는데 마이크 니콜스의 <졸업> 같은 경우엔 이에 속하지 않는다. 다만 수동적으로 행동하며 일말의 쾌락을 잠시 추구하는 '벤자민'의 성격을 보면 확실히 아메리카 뉴웨이브의 특징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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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주의)

벤자민을 유혹하는 로빈슨 부인

  • 벤자민은 물에 들어가기 싫어했다.

이 영화는 미장센적으로나 주제적으로나 상당히 탄탄하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첫째로 미장센에 대해 언급해보겠다. 벤자민의 수동적인 행동은 영화 초반에 공항 무빙워크 위에 가만히 서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그의 행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씬의 후경을 보면 복잡한 패턴의 벽지가 그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그는 어떤 특정한 계기로 점점 능동적인 성인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런 변화를 잘 드러내고 있는 미장센은 바로 물인데 벤자민은 그 물에 들어가기를 굉장히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초반에 벤자민은 홈파티를 하는 동안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수조 앞에 쪼그려 앉아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 고민에 잠겨 있다. 여기서 수조는 벤자민을 가두고 있는, 혹은 아직 탈태하지 못한 미숙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곳에 처음으로 파란을 만드는 것은 벤자민을 유혹하려는 '로빈슨 부인'이다.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에게 자신을 집까지 차로 데려다 달라며 그가 빌려주려 했던 차키를 그에게 던져버리는데 그 차키는 수조 속에 퐁당 들어가버리고 벤자민은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수조 속에 손을 넣어 차키를 빼낸다.
이후 영화 내내 벤자민은 자신의 선택을 행동까지 옮기지 못하고 어른들에게 휘둘리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로빈슨 부인의 유혹에 넘어가버리는 것은 물론이며 'mr.로빈슨'에게는 버번을 먹고 싶다고 하는데도 계속 스카치를 받아마시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코미디적인 장면도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벤자민은 부모님의 강압적인 요구를 받아 손님들 앞에서 졸업 세레모니로 잠수복 다이빙을 선보이는데 이 때 그를 비추는 롱샷은 마치 그가 어른들의 수조 속 작은 관상어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풀장에서 사색에 빠진 벤자민

그런 그가 처음으로 물 속에서 빠져나오는 장면은 그가 점점 능동적인 행동을 함으로서 어른들에게 휘둘리지 않게 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벤자민을 물 밖으로 꺼내준 것은 결론적으로 또래 이성인 '일레인'의 역할이 컸다. 벤자민은 로빈슨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하며 부인에게 일레인과는 절대 교제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하지만 결국 일레인과 교제해보라는 부모님의 권유에 벤자민은 어쩔 수 없이 예의 상 일레인을 만나보는데 두 사람은 결국 운명적인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로빈슨 부인에게서 벗어난 그의 반항적이면서도 능동적인 첫 행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비가 오는 다음 날, 차를 타고 일레인과 데이트를 하러 로빈슨네 집 앞으로 가는데 카메라는 차 밖에서 차 안에 있는 벤자민을 찍고 있다. 이 때 바깥은 비가 내리고 차 창에는 물이 흘러내려 마치 차 안에 있는 벤자민이 수조 속에 갇힌 거 같은 미장센이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차 안에 로빈슨 부인이 불쑥 들어와 또다시 벤자민을 간섭한다. 일레인을 만나기 전의 벤자민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또다시 로빈슨 부인에게 놀아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차 문을 박차고 나와 비(물)를 잔뜩 맞으며 일레인에게 달려가 진실을 고백하며 로빈슨 부인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로빈슨 부인과 벤자민의 관계가 완전히 멀어졌다는 것은 다음 컷의 카메라 연출에서도 드러나는데 카메라는 로빈슨 부인의 애석한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다가 줌 아웃을 통해 벤자민과의 오버 더 숄더 샷으로 전환되며 시각적으로 먼 거리감을 인지시켜준다.

재밌는 것은 일레인을 선택하는 것이 어른들의 제안이나 요구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동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로빈슨 부인은 분명 벤자민에게 일레인과 교제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긴 했으나 벤자민 부모님들의 경우 일레인과의 교제를 적극 밀어붙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엔딩도 그렇고 결과적으로 어른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것을 주장하고 있다기 보단 어른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어떤 권유에도 불구하고 특정 선택지에 대해 스스로의 직감과 판단에 근거해 능동적으로 행동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럼 물 밖으로 나온 벤자민은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일까? 아니다. 그 다음으로 그가 갇히는 곳은 동물원 철창 안이다. 일레인과 칼의 교제는 한쌍의 원숭이 커플로 대치되는 반면 벤자민은 고독히 홀로 앉아 사색에 빠져있는 침팬치 한마리로 랙포커스되기도 한다. 선택을 한다고 한들 그것이 가져다 주는 쾌감과 희열감은 잠시 뿐이다. 이 영화는 선택하고 희열하고 다시 고뇌하고 선택하고 행복해하고 후회하기를 계속 반복한다. 졸업 후 성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코웬 형제의 <시리어스 맨>은 인생을 진중하게 살아도 결코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은 인생이란 끝없이 선택해도 끝없이 후회하고, 고뇌하고 다시 선택하기를 반복하는 한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듯 하다. 그리고 두 작품은 때론 그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인지시켜줌으로써 관객에게 위로나 위안을 주는 것 같다.

결혼식장까지 뛰어가는 벤자민 (망원렌즈)

  • 인생은 차를 버리고 망원렌즈 앞에서 질주하는 것

앞서 말한 물 만큼 두드러지는 미장센은 아니지만 역시 필자는 작품 속에서 탈 것의 미장센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에 나온 공항의 무빙워크도 탈 것이라면 탈 것인데 이것이 나타내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인물의 입지는 엔딩에 도달해 목적지를 모르는 버스에 탑승함으로써 기승전결을 완성시킨다. 또한 영화 중반에 계속 등장하는 풀장 위 튜브는 정처 없이 물 위를 떠다닐 뿐이며 그나마 자유로운 벤자민의 자가용 외제차는 호텔을 가고 일레인과의 첫 데이트를 억지로 가는 등 어른들에게 휘둘리는 행동을 취하는데 사용되곤 한다. 물론 그 와중에 능동적인 행동을 취할 뻔한 적이 있으나 중반엔 로빈슨 부인이 차 안을 난입해 그 능동을 다시 탈환당하고 후반에 결혼식을 갈 땐 기름이 미처 떨어져 차가 멈춰서고 만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그가 취한 모든 능동적 행동들은 탈 것을 타지 않고 오로지 제 발로 열심히 뛰어다닐 때만 취해졌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사진은 촬영적으로 상당히 인상깊은 연출이 되었다. 무엇보다 망원렌즈가 만들어낸 Z축의 길이의 축소는 그의 달리기가 한껏 느리게 보이게 만들어 주체적인 행동을 선택한 그의 험난한 선택을 더욱 강조시켰기 때문이다.)


소감 : 필자는 가끔 코웬형제의 <시리어스 맨>이 인생에서 꽤나 위로가 됐던 적이 있다. 인생이란 원래 제멋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는 메세지가 얼마나 얄미우면서도 위안이 되는지, 그 영화를 인생에 적용시키고 나면 인생 그 자체를 수긍하고 다시 일어서는게 무척 수월해지곤 했다. <졸업>도 그런 영화이지 않았나 싶다. '진정한 성인이 되는 것은 스스로가 결단력있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다만 장담하건데 쾌락은 잠시일 뿐 항상 되돌아와 다시 고뇌할 것이다.' 이것 또한 수긍하고 나면 어떤 장애물도 극복하기 무섭지 않지 않을까?

졸업 엔딩 장면


이 영화가 유명한 이유는 엔딩에서 신부를 성공적으로 훔쳐낸 후 서로 급 뻘쭘해져 웃음을 감추고 서먹, 막막해진 벤자민, 일레인의 표정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 서먹, 막막함이 인상깊게 남는 이유가 그 전에 잠시 비춰진
위의 미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행복은 잠시 불행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던 것 같다. 이 작품 주제의 이면에서 그 말을 잠시 곱씹어본다.

별점 : ★★★★★

한줄평 : 인생의 무엇을 느끼던 이 영화에선 모두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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