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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 신카이 마코토 (하늘의 운명을 믿고 전체주의를 반성하다.)

by 대담한도약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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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2019)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에서 21년에 개봉한 <용과 주근깨 공주>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함께 '포스트 미야자키'를 이끌어갈 인물로 기대받고 있는 명감독으로 유명하다. 그의 다른 작품인 <너의 이름은>과 <언어의 정원>을 돌이켜보면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하늘과 빛을 가장 아름답게 구현해내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날씨의 아이>는 그런 그의 진면목을 가장 최고조로 선보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이 작품이 수작이라고 쉽사리 말할 수 없다.

분명 작품의 시각적인 요소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내리쬐는 비와 하늘이 개고 내리쬐는 햇볕에서 반사되는 빛의 연출은 스크린을 가득 채울 만큼 찬란하다. 이 작품의 호평은 여기서 시작되고 여기서 곧장 그친다. 그 이상 말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작품의 개연성적인 부분에 있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우연으로 시작되고 하늘의 감정을 감히 인간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처럼 모든 우연들을 이와 함께 포장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좋게 설명할 수 없는 개연성에 당연히 이들의 행동력과 동기마저 부자연스러우니 만족스러운 것은 단지 시각적 요소뿐일 수밖에 없다.

날씨의 아이 ost (들으면서 읽으시길 바라며)


(스포 주의)


날씨의 아이 속 '호다카'와 '스가', 그리고 '히나'
  • 누가 주인공인가?

사실 작품에 있어 이러한 결핍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눈요기가 중요하다면 상관없겠지만 평가는 무엇을 중요시여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시나리오를 중요시 여긴다면 아무래도 이 작품은 작화를 뽐내기 위해 희생된 제물에 불과하다. 이 관점에서 <날씨의 아이>는 너무나도 상업적이고 양산적이다. 상업드라마, 영화가 흔히 그렇듯 로맨스가 당연하단 듯이 들어가 있는데 또 재밌는 건 영화의 중심엔 이들이 핵심이 되는 것이 아닌 부가 요소인 날씨가 중심이 된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가 된다면 분명 날씨나 계절이 되어도 될 것이다. 이 작품은 <날씨의 아이>이다. 즉 '맑음 소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만 여주 '히나'의 이야기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다. 영화를 다 보고 머릿속에 맴돈 것은 인물들이 아닌 하늘을 표현해낸 작화뿐이었다. 왜 가출 소년인 '호다카'와 맑음 소녀인 '히나'는 인상을 남기지 못했을까?

  • 충동적인 인물들의 행동들의 배후는 하늘

작품 내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충동적이다. 충동적이란 것은 계기도 확실치 않고 후를 생각하지 않은 감정적인 행동이란 것인데 호다카는 집에서 가출을 하여 배를 타고 도쿄로 온다. 하지만 그가 가출한 계기도, 도쿄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도 온전하지 않다. 작품 내 호다카에게서 느껴지는 욕망은 단지 '히나'에 관한 사랑뿐이다. 히나를 만나기 전까지 그에겐 욕망이 없다. 뉴스에서는 뜬금없이 왜 불법 총기 소지에 관한 언론이 보도되었는가, 제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 하나 호다카는 너무 우스꽝스러운 우연으로 그 총기를 길바닥에서 습득하고 숨긴다. 심지어 거의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

그를 움직이고 살아가게 한 모든 원동력과 인연들은 우연으로 시작한다. 영화 중반에서 그는 스스로 꿈을 꾸었다고 한다. 섬에 살던 시절 그곳을 떠나 빛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자전거를 타고 빛을 쫒은 호다카. 그 빛은 건널 수 없는 바다를 넘어갔고 그는 그것을 쫓아 배를 타고 도쿄로 가출을 했다. 그는 히나를 만난 우연이 실은 과거부터 자신이 쫓아온 욕망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즉, 하늘의 빛이 이어준 인연이었던 것처럼 묘사된다. <너의 이름은> 작품에서 보다시피 이 감독은 하늘이 점지해준 운명을 깊게 믿는 듯하다. 그의 가출생활을 거들어준 것은 우연히 배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오컬트 잡지 회사의 '스가'이다. 회사 운영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 스가는 굶주린 길고양이를 두고 갈 수 없는 마음으로 가출소년 호다카를 회사에 채용하는데 이들의 만남에 있어 필연적으로 필요했던 것 역시 하늘의 도움이었다. 갑판에서 폭우가 내리는 것을 기다리는 호다카는 초자연적인 말 그대로 물폭탄 같은 우천에 미끄러져 자칫 바다에 빠질 뻔한다. 그리고 그때 스가가 등장하여 호다카를 구해주는데 마치 없었던 일이란 듯이 하늘이 곧장 개고 만다. 스가는 대책 없이 도쿄에서 방랑생활을 하는 호다카를 굶주린 길고양이를 보는 마음으로 오컬트 잡지 회사에 채용한다. 그리고 이 두 우연, 무대책의 가출과 스가와의 만남이 '맑음 소녀'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큰 비중을 자치하지 않는 히나의 남동생 '야스이'와의 인연을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것을 시작으로 연출하는데 작품 내의 모든 퍼즐은 개연성을 벗어나 우연에서 시작된다. 즉 쉽게 묘사하자면 우연은 곧 '하늘'이고 이로써 모든 우연을 운명으로 포장하려고 시도한다.

'맑음 소녀'가 된 히나의 이야기도 하늘이 점지한 운명이었다. 히나는 어머니를 간병하는 병실에서 문이 닫힌 창문에서 커튼이 나풀거리는 것을 본다. 시선을 따라 바깥을 바라본 히나는 마치 빛웅덩이가 생긴 것과 같은 현상을 보곤 낡은 건물 옥상의 제단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머니와 맑은 하늘에서 걷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그녀는 '맑음 소녀'가 된다. 이렇게 호다카와 히나는 하늘의 점지 아래 하나의 운명으로 엮이게 된다. 실상 하늘과 운명으로 포장된 개연성이지만 말이다. 감독은 이러한 하늘을 인간이 감히 관측할 수 없는 신비하고 다른 세상이라고 작 중 어르신들의 입으로 반복 설명한다. 애시당초 개연성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고 해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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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질적인 권총 한자루와 낡은 건물

그들의 운명은 하늘이 점지해준 것이나 그것과는 별개로 운명을 좌우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호다카가 길바닥에서 습득한 불법 총기 한 자루이다. 총은 하늘의 뜻과는 다르게 총의 발포가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으로부터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가 인위적으로 운명을 결정시키는 힘이 있는 물건이다. 그리고 호다카는 이것을 손에 쥘 때마다 그를 불행으로 몰아갔다. 호다카가 '바'에 취직하려는 히나를 구하기 위해 총기를 발포했을 때 그는 히나에게 감사 대신 충격과 미움을 받았으며 이 계기로 호다카는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두 번째 발포는 히나를 찾아 제단으로 향하는 길에 스가 앞에서 발포했을 때이다. 굳이 발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총성이 생기자 경찰은 건물을 급습한다. 조용히 호다카를 돕고 사라져야 했던 스가는 결국 호다카를 돕기 위해 유괴죄 혐의가 기정사실이 된 것과 더불어 경찰 공무방해까지 생긴다. 이로 인해 스가는 진행 중이던 딸아이 양육권 공방에 있어 난항이 생긴다. 그리고 호다카는 불법 총기 소지가 확실하게 적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총하나가 하늘의 점지한 운명을 바꿀 순 없었다. 결국 히나와 호다카는 가까워졌으며 호다카는 히나를 하늘로부터 구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작 중 후반에 호다카를 추격하는 경찰들은 히나의 소원에 내린 천둥 하나로 그들을 놓치게 되지 않는가. 총은 결코 하늘의 힘을 꺾어내지 못했다.

낡은 건물 안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호다카


영화의 처음과 대미를 장식한 배경은 제단이 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낡은 건물과 제단은 그 둘의 상태가 딱 보기에도 굉장히 불균질하다. 분명 다 쓰러져가는 건물이지만 함께 있는 제단만큼은 싱그러운 제물이 올라가 있고 깨끗이 관리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총기 또한 그러하다. 하늘과 '맑음 소녀'에 관한 소년 물에서 갑작스러운 총의 등장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큼 이질적이지 않은가. 낡은 건물과 총은 제단과 하늘과 대립되는 포지션에 있도록 연출되었다.

  • 제물이 된 맑음 소녀, 전체주의


다만 제단의 위치가 낡은 건물 위에 세워져있는데 제 아무리 잘 관리된 제단이라고 한들 결국 건물이 무너지면 제단은 자연스레 사라져 버리기 마련이다. 왜 감독은 제단을 낡은 건물 위에 위치시켰을까? 분명 낡은 건물과 대립되는 깨끗한 제단은 그 신성함을 부각하기도 할 것이지만 결국 무의식적으로도 그 존립이 위태해 보이기도 한다. 시간적으로 본다면 낡은 건물은 과거를 상징하며 깨끗이 유지되고 있는 제단은 현재를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거의 잔재 같은 건물은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과거를 부정하듯이 말이다. 이를 더 파헤치기 위해선 일본의 역사를 돌이켜보아야 한다. 알다시피 과거 일본의 역사는 그리 당당하지 못하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킨 후발 제국주의 국가였다. 그들은 식민지를 세우는 등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중일 전쟁을 포함 여러 국가와 전쟁을 하였는데 그를 위해 탄압당한 것은 일본 국민들과 식민지국들이었다. 이러한 야욕은 결국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나가사키와 후쿠시마에는 리틀보이와 팻맨이라는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이것은 일본에게 있어서는 치욕스러운 패배였고 숨기고 싶은 과거이다.

위의 사진은 <날씨의 아이>의 포스터이고 하나는 원자폭탄이 터진 일본 하늘의 버섯구름이다. 포스터는 히나가 하늘에 불려갈 때마다 도착했던 하늘의 세계인데, 적란운의 모습은 마치 원자폭탄으로 생기는 버섯구름을 연상케 한다. '맑음 소녀'는 신비로운 존재이나 도쿄를 위해, 일본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제물이기도 했다. 그녀는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어야 하는 군국주의, 전체주의의 희생양 같은 존재였다. 과거 일본 국민들과 식민지국처럼 말이다. 작 중 스가는 이런 '맑음 소녀'의 희생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제물 한명 바쳐서 날씨가 돌아온다면 난 환영이야. 솔직히 다들 그럴걸.

분명 도덕적인 것을 배제한 교환비로 본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이고 스가 또한 그러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후의 그는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양육권 문제로 몸을 사려야 했던 스가는 호다카와 히나가 걱정되어 그들을 구하러 가는 건 물론이고 경찰을 향해 몸을 날리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의 반전은 마치 일본의 과거 행적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체주의와 일치하는 생각도, 전체주의에 반대되는 행동도 아이들을 돌보는 '성인'인 스가가 직접 했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처음부터 개인인 히나를 구하러 달려간 사람은 '어린 소년'인 호다카이다. 그는 맑은 날씨가 돌아왔으면 좋겠냐는 히나의 질문에 즉답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서 그것을 바라진 않았던 것이다. 어른인 스가와 달리 아이들은 전체주의를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앞에서 낡은 건물은 숨기고 싶은 과거를, 깨끗한 제단은 현재를 상징하는 포지션에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미래의 포지션은 바로 어린아이들인 호다카와 히나가 아닐까? 만일 '맑음 소녀'를 구해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앞으로의 날씨를 위해 오히려 미래를 희생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로써 스가가 낡은 건물로 향한 것은 과거를 고쳐먹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구하러 간 것이 된다.

적란운과 원자폭탄의 버섯구름, 그리고 전체주의를 작품에 담은만큼 2차 세계대전을 빼놓고 말할 수 없었는데 총기라는 소품은 무력과 전쟁을 상징하지 않는가. 분명 호다카는 우연히 습득한 총기를 부적처럼 생각하여 소지하였다. 하지만 그 총기는 행운은커녕 호다카에게 불행만을 가져왔다. 마치 대의를 위해서 행한 전쟁이 언제나 불행을 가져온 것처럼 말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작품의 내용과 정말 안 어울리는 총을 호다카에게 거머쥐게 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 전체주의를 극복한 결과

호다카의 간절한 기도로 그는 하늘로부터 히나를 구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씁쓸하였다. 소년물의 보편적인 해피엔딩과는 다르게 히나도 구출하고 날씨도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어 호다카가 다시 도쿄로 돌아왔을 땐 3년 동안 끊임없이 비가 내려 도쿄는 물에 잠긴 모습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과거 '맑음 소녀'의 고객이자 도쿄 시민인 한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고 있니? 도쿄 부분은 원래 바다였어. 2백년 정도 전엔 말이야
옛날엔 도쿄가 작은 만이었다지. 그걸 인간과 날씨가 조금씩 바꿔 온 거야.
그래서 원래로 돌아온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할머니는 자신이 살던 옛 터가 침수되고 도쿄가 물에 잠겼지만 도쿄는 원래 그랬다며 덤덤히 지금의 도쿄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1800년도의 일본은 사무라이가 유명했던 에도 시대였다. 그 시대에 일본은 유례없는 번영과 발전을 일궜는데 이 작품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 전인 그때를 언급하며 전체주의와 전쟁의 결과를 맞기 전으로 도쿄를 회귀시킨 것이다. 호다카는 히나를 찾아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스가는 그런 그에게 세상은 원래 미쳐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호다카는 세상은 처음부터 미쳐있고 원래 도쿄는 바다였으니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히나에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호다카는 히나를 보자마자 다르게 생각한다.



호도카는 자신과 히나가 세상을 바꾸고 소녀를 구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분명 침수된 도쿄의 모습을 보며 죄책감을 느꼈다. 그것은 분명 도쿄에서 살아갈 전체에 대한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바꿨다. 전체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전체는 그대로일 뿐 본인은 소녀를 구한 것. 그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이 탄압되어선 안된다. 전체는 그런 개인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하늘의 뜻과 운명은 거역할 수 없으며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 무력과 전쟁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이런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 번외) '맑음 소녀'가 아닌데 어떻게 하늘로 갔을까?

누군가는 어떻게 '맑음 소녀'가 아닌 호다카가 하늘세계로 갈 수 있었느냐고 물을 수 있다. 아무래도 호다카가 '맑음 소녀'인 히나와 반대되는 '비 소년'은 아니었을까? 작 중 초반 나츠미와 호다카가 '맑음 소녀'에 관한 정보를 얻으러 점집에 갔을 때 점집 아주머니는 '비 소녀'에게는 용 신이 붙고 '맑음 소녀'에게는 여우 신이 붙는다고 하였다.

용 그림의 모자를 착용하는 호다카

이 작품에서 호다카는 스가에게서 퇴직금으로 모자를 하나 받게 되는데 모자 장식으로는 용 그림이 새겨져 있다. 또한 분명 작품 초반, 호다카가 탑승한 배가 도착하기 전엔 도쿄에 비가 오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가 도쿄 땅을 밟자 도쿄엔 계속 비가 내렸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보면 히나를 구해내어 도쿄에 또다시 비가 내리게 되었기에 혹시 '비 소년'은 아니었을까 한 번은 생각해볼 만하다.


▶ 소감

솔직히 이 작품을 아름답기만 하고 실속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되었다. 인물들에 대한 서사는 탄탄하지 못하고 개연성은 하늘에게 맡겨버린 무책임함을 미술적 요소로 포장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글을 다 써 내려간 지금도 완고하다.
이 영화가 엉성해 보이는 이유는 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가치관을 너무 고집 피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적어도 하늘의 뜻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그 언지가 모자랐고 설명이 무례했다. 영화를 보는 것은 자신의 팬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포함되기 때문에 진짜 최소한 왜 가출했는가, 히나는 왜 나이를 속였는지 그 오랜 시간 어떻게 보호소에 가지 않고 남매가 단 둘이 가정을 꾸려 살아갔는지 설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하늘의 뜻은 모르겠고 대충 인물들의 행동거지와 생각을 보았을 땐 '어떻게 저렇게 무대책으로 가출을 하지? 어떻게 아이 3명이서 경찰을 피해 살아갈 생각을 하고 도주를 하지?'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스가와 나츠미의 행동들마저 아이들에게 동조되는 것이 어른스럽지 못해 보였기에 왜 인물들이 다 애처럼 굴지?라고 생각했다. 글을 써 내려가며 되돌아보면 나도 스가처럼 '맑음 소녀'를 희생시키는 것에 동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적어도 이 작품은 일본의 전체주의에 관한 내용만큼은 확실하게 잡아낸 점이 몹시 긍정적이다. 하지만 하늘의 뜻을 억지 부려 버무린 것은 받아들이기 난감하다. 너무 남발해대면 재미가 없고 경외스러운 하늘의 뜻마저 퇴색돼버리기 때문이다. 부디 신카이 마코토의 이런 하늘 타령은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서 그쳤으면 좋겠다.

의문점이 드는 게 분명 하늘의 뜻을 중요시 여겼는데 왜 굳이 '맑음 소녀'를 전체주의가 생각나게 만들어서 하늘의 뜻과 전체주의를 동일선 상에 두게 만들었을까? 최소한 '맑음 소녀'가 인간의 뜻이라면 제물을 바치는 데에 하늘이 개입해선 안됐다. 이렇게 되면 하늘이 만든 모든 인연은 호다카가 히나를 '맑음 소녀'로 각성시키기 위해 작업 친 게 되어버린다.


▶한 줄 평

신카이 마코토의 적은 신카이 마코토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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