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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 미셸 공드리

by 대담한도약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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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 미셸 공드리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er's lot!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h'd

결점 없는 수녀의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을 잊고, 세상으로부터 잊히니.
순결한 정신의 영원한 햇빛!
모든 기도를 받아들이고, 모든 바람을 체념하니.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



영화 제목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 of the spotless mind)은 알렉산더 포프의 시 중 위의 구절에서 가져와 만들어졌다. 순결한 정신의 영원한 햇빛. 그런 것이 가능할까? 엘로이즈와 아벨라르는 20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금지된 사랑을 하다가 엘로이즈의 삼촌에 의해 아벨라르가 거세를 당하게 된다. 아벨라르는 수도사가, 엘로이즈는 수녀가 되었는데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애 편지로 기억되고 있다.

<이터널 선샤인>의 내용은 굉장히 간결 명료하다. 사랑을 하였고, 다투고 이별하였다. 서로 연인을 잊고 싶어 기억을 삭제하였지만 삭제된 후로도 다시끔 서로 사랑을 한다.

여주인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깔이 연애 상황에 따른 감정의 온도로 묘사된다. 불탈 때는 더욱 붉게, 식을 때는 더욱 파랗게, 하지만 그것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시간대를 교차하는 편집에 따라 관객들이 헷갈려할까봐 만들어놓은 장치라고 보는게 가장 어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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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주의)



인간은 언제나 영원한 것을 추구한다. 태생적으로 영원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그것을 갈망하지만 결코 그것을 쟁취해낼 수 없다. 늙고 죽음도, 만남과 이별도 인간에겐 필연적이고 너무나 당연하다. 사랑에서 영원함이란 것을 추구할 수 있을까? 영화 제목 <이터널 선샤인>처럼 영원한 햇빛이 될 수 있을까?

어떤 대상에 대한 기억을 지워주는 병원을 알게 된 '조엘'은 그 곳을 찾아가 여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한다. 그녀는 너무나 헤프고 무식하고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발렌타인 선물을 준비한 자신을 몰라본 체하고 모르는 남자와 스킨십을 나누고 있었으니 말이다. 안그래도 화가 난 상태인데, 남친이었던 자신이 미워져 그 기억을 지웠다고 하니 자신도 이처럼 힘들 바엔 똑같이 기억을 지워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도 현실적이고도 솔직하고 간결하다. 비록 SF장르가 포함되어있지만 말이다. 기억을 지우는 기술과 사랑이란 소재의 접목은 자연스레 두 서브젝트를 단일화시키는 듯 하다. 감정의 형성은 곧 기억의 지도가 형성되는 것과 같다. 그 사람과 함께한 기억을 지우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지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서론이자 결론일 뻔했다. 하지만 결말로 달려가며 마지막에 새로운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한다. 조엘이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도피하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에 조엘은 출근길에 갑자기 일탈을 하고 싶어져 출근기차를 타지 않고 몬튼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간다. 이것은 조엘이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을 거부하고 기억 속의 그녀에게 몬튼에서 만나자고 기약하였기 때문에 무의식이 자신을 그곳으로 데려간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낯선 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클레멘타인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다시끔 가까워진다.

기억을 지웠음에도 다시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조엘커플만은 아닌 것 같다. 하워드박사와 매리 또한 병원에서 금지된 사랑을 하였음에도 또 다시 사랑에 빠졌던 것을 보면 기억을 지운 모든 이들에게 공통된 경험인 듯 보이는데, 하워드박사의 경우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재회가 되었지만 조엘은 자신의 강한 의지로 그것을 해내었기 때문에 더욱 기적같은 일처럼 보여진다.

조엘은 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를 포기한 것일까? 패트릭이 클레멘타인을 뺏은 걸 알아차려서? 물론 그것이 기억 속에서 각성한 빌미가 되었다고 볼 순 있겠으나 조엘이 최근에서 가장 과거까지 기억을 더듬으며 그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맛보았기 때문이다. 추억이란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농익어 무엇이든 더 좋아지는 법이다. 힘든 일은 더 무뎌지고 행복한 일은 더 그리워진다. 어째선지 행복한 기억이 더 많이 추억되었기에 조엘은 기억지우기를 포기한 것이다.

비록 기억에 불과한 단편화된 클레멘타인이지만 그녀는 조엘의 머릿 속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였다. 어릴 적 기억으로 함께 도망쳐 그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주었다. 조엘이 사랑했던 클레멘타인이라는 여자는 사사로운 결함이 있을지 몰라도 그런 부끄러운 과거마저 포용할 수 있는 여자였다고 그렇게 기억된 것이다.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과 미셸 공드리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이란 특별한 것이 없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연애한 과정은 관객들이 함께 기억의 지도를 더듬어가며 모두 목격하였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너무나 흔한, 어쩌면 모자란 연애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워보였던 이유는 '그럼에도' 그들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더럽고 추하지만 '그럼에도'라는 부사를 붙일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만났을 때 그들의 사랑은 분명 '그렇게에'라는 부사가 활용되었을 것이다. 첫인상이 좋고 만남이 좋기에 좋은 모습을 보고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을 지우고 그들이 재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였을까? 아무래도 기억을 지운 후에도 무의식은 지울 수 없는 듯하다. 하지만 매리가 보내준 녹음파일을 모두 듣고도 왜 조엘은 떠나가려는 클레멘타인을 붙잡았고, 클레멘타인은 기다려라는 말에 기다려주었는가? '그럼에도' 사랑할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사랑은 기억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과의 대립이 이뤄진다. 어떤 기억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는가? 혹은 어떤 기억이 더 강렬하였는가? 시공간적으로 우열을 가릴 때 이별과 만남을 선택한다. 아무래도 조엘의 커플은 정말 지독히도 싸웠지만 그럼에도 행복하였나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 하워드와 매리가 사랑하였음에도 만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해진다. 그럼에도 사랑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리에게 하워드 박사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나보다. 그리고 하워드 또한 부인에 비해 젊은 매리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그들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두가지 인용구가 나온다.

티끌없는 마음에 영원한 햇빛
망각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전자의 경우 매리가 하워드를 향한 사랑을 의미하고 후자의 경우 하워드를 향한 사랑의 결말로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를 관객에게 귀띔해준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이 두 사람은 마치 매리가 읊어준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에 등장하는 시의 두 인물처럼 보인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가 20살 차이를 극복한 사랑이었기에 이것은 기정사실로 여겨지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삼촌에게 거세를 당한다. 그리고 영화 속 하워드는 기억을 지우지 않았기에 기억을 지운 매리를 모른 척 했어야 했다. 정말로 고통스러운 것은 하워드였을까 매리였을까? 왜 매리는 그토록 니체의 시를 읊었을까? 엘로이즈와 다르게 매리는 실수를 포함에 모두 망각하였기에 하워드에 비해 그녀는 그런 복이 있었다.

패트릭은 왜 클레멘타인과 사랑을 이어나가지 못하였을까? 패트릭은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는 것은 일조하였을지 몰라도 기억의 지도 안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패트릭은 조엘처럼 그럼에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사랑한 것이 된다. 물론 패트릭이 클레멘타인의 단점마저도 포용할 준비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굳이 가짜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사랑은 기억을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터널 선샤인>은 아마 사랑을 그렇게 여겨 제목을 그리 지은 듯 하다. 하지만 선샤인이 사랑의 밝은 단면을 상징한다고 가정하면 결코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애초에 사랑을 햇빛처럼 언제나 밝은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절망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터널 선샤인>이란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 하지만 사랑에 관하여 두번 곱씹게 만들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아름다운 단면만이 아닌 더럽고 추한 모습까지 모두 보여주고도 그것에서 관객에게 공감과 설득을 해내었기 때문이다.



▶소감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굳이 매리와 기술자 스탠이 엔조이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놓고 하워드에게 애정표현을 하는 것이 그렇게 진정성있게 보여질까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조엘보다 하워드와 매리의 설정이 더 흥미로웠다고 여겨졌는데, 이 영화에서는 엘로이즈와 아벨라르를 조명하는 대신에 사랑이 기억에 귀속되지 않았다는 일반화를 하기위한 도구로 쓰여진 것 같아 이 또한 아쉬웠다.

사랑하는데에 그렇게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러나 저러나 사랑해주는게 진짜 인연이라면 내면을 가꾸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 아닐까?


▶한줄 평

그렇기에 사랑했지만 결국 그럼에도 사랑한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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