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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

by 대담한도약 202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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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치 -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해리포터>나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과 같은 과거의 인기작들과는 대조적인 성향을 띄는 작품이다. <샹치>와 비교하기 앞서 잠시 이 두 작품을 설명해야할 것 같다. 과거 <해리포터>와 <퍼시잭슨과 올림포스의 신>을 살펴보면 주인공들은 모두 태생이 특별한 부모의 자식들이었다. <해리포터>의 '해리'는 뛰어난 부모들에게서 타고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의 '퍼시'는 신화 속 '포세이돈'이 자신의 아버지라 반인반신의 핏줄을 타고났었다. 그들은 또한 불우한 성장기를 겪었는데 고아였던 '해리'는 사촌들과 함께 자라며 가족취급도 받지 못하는 짐덩이었고 '퍼시'는 가난한 어머니와 가정폭력을 일삼는 알코올 중독자 양아버지에게서 자랐다. 그러나 운명이 그들을 이끌었고 자신들의 뛰어난 출생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인물 설정이 일본 애니메이션 <나루토>에서도 드러나는 것을 보면 비단 서양문화에서만 나타나진 않았던 것 같다.

 

 당시의 베스트 셀러를 보면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대중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데, 위와 같은 특징들을 보노라 하면 과거 사람들은 불우한 그들의 삶을 위로 받기 위해 자신들의 숨겨진 능력이나 출생을 상상하고 즐기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요소를 성공의 키워드로 인지하였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생각 또한 바뀌기 마련이다. 21년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인물 설정에 있어 이러한 성향의 과도기에 있다고 느껴졌다. '샹치'는 뛰어난 마법사도, 신의 아들도 아니며, 거미에게 물렸다던지, 몸 속에 괴물을 품고 있지도 않다. 그는 쿵푸를 할 줄 아는 평범한 중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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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스포 주의)


 

  • '샹치'는 타고난 영웅적 인물인가?

 '샹치'는 타고난 핏줄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물론 그의 아버지 '웬우'가 '텐 링즈'라는 범죄 조직의 수장이며 어머니가 전설 속 마을 출신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이었다. 아버지가 웬우가 뛰어난 것은 그가 가진 '텐 링즈' 라는 무기 덕분이었으며 어머니가 뛰어난 것은 마을에서 전수되는 무술 덕분이었다. 그들은 해리포터, 퍼시잭슨, 나루토, 토르 같은 뛰어난 핏줄이 아니었다. 어쩌면 노력으로 그 자리까지 온 것이다. 주인공 '샹치'는 그런 인물들의 자식이었다. 그가 괴한들의 습격을 쉽사리 무찌를 수 있던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어릴 적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주먹에 피를 흘려가며 무술을 연마하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성공하기 위해 피나도록 노력한 범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그가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선인이었는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욕심도 없어 죽마고우와 '주차 요원'을 하며 비싼 차를 맡으면 몰래 도로를 질주하며, 퇴근 후 노래방을 즐기는 흔해 빠진 일반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과거 타 작품이 가진 습성들의 완전한 탈피가 아닌 '과도기'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어머니의 출신과 아버지의 도구 때문이다. 아무래도 관객과 너무나도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 영웅이 되는 것은 제 아무리 명장이 오더라도 쉽사리 설득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일반인들과 차별화되는 오브제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시대적인 이데올로기가 변해가고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인 듯하다. 이제 대중들은 선천적인 요소를 그다지 키워드로 보고 있지 않다.

 

 

  • 더이상 영웅의 키워드는 '타고남'이 아니다.

 '샹치'가 앞서 말한 '해리포터'와 '퍼시잭슨'과 동일하게 타고난 인물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뭐가 차별점이 되는가? 바로 자신의 출생과 과거를 알고 있는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그들과 다르게 '샹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며, 나아가 자신의 출생 또한 모두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결핍은 과거를 똑바로 직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조직은 외면했으며 어머니의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였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인물들이 '샹치'에게 강조했던 것이 있다. '네가 누구인지 인지하라는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인물들에게 정체성을 묻는다. 그것을 찾아내고 확립하라고 계속해서 반복한다. 아버지 '웬우'는 이름을 중요시했다. "링웬, 이름은 중요해요. 이름에는 선조들의 정신과 혼이 깃들어 있죠.' 어머니는 '샹치'에게 말하였다. '샹치, 네 안에는 용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 이모는 '샹치'에게 말하였다. '너는 네가 누군지 아니? 네 어머니는 그걸 알고 있었단다.' '샹치'가 범인에서 비범인으로 탈피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는 '자신이 누군인지 똑바로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나리오가 진행됨에 따라 '샹치'가  아버지의 힘과 어머니의 힘, 이 두 가지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동생인 '샤링'은 왜 영웅이 되지 않았는가? 출생이 동일한 그의 여동생은 오빠와 다르게 어둠의 세계를 더 선호하였다. 아버지와 야망이 비슷한 그녀는 여성이 '텐 링즈'에 소속되지 못하자 그녀 자신만의 조직을 만들어 마카오에서 다크 웹 투기장을 운영하였다. 어머니의 고향을 제대로 몰랐으니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했던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지향하는 방향이 오빠인 '샹치'와 다르기에 다른 길을 간 것이다. '텐 링즈'를 무너뜨리지 않고 재건한 '샤링'을 관객들은 비난하는가? 글쎄다. 그들은 단지 방향성이 달랐을 뿐이다. 어쩌면 그녀 또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 (개인적으로 왜 굳이 여기서 작품에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는지 동감하지 못한다. '샤링'이 아버지 '웬우'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당위성은 뭐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왜 굳이 성별을 통해 그 당위성을 충족시켜야 하는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페미니즘적인 것과는 동떨어져 있는 주제이다. 소고기 스테이크에 게 내장 소스를 부으면 그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성평등을 지향하는 추세를 상업성에 이용하고자 하는게 티나서 불호였다.)

 

 본론으로 돌아와 <샹치>를 보노라 하면 이제 대중들이 선호하고자 하는 것은 타고남이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바를 똑바로 아는 것을 중요시하는 추세이다. 출생이나 과거야 되돌아보면 보이는 법이다. 그렇다면 가고자 하는 바는 어떻게 하란 것일까? '샹치'와 다르게 '케이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찾지 못한 인물이었다. '탈로'의 마을에서 활쏘기를 연습하는 '케이트'에게 마을의 교관인 '광보'는 말한다. '쏘아보다 보면 맞추게 되는 법이죠.' 감독은 방향을 상실한 이들에게 찾을 때까지 과감하게 시도하기를 권유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케이트'도 활쏘기는 그 때가 생에 처음이었다.

 

 

  •   '샹치'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버지는 범죄 조직의 수장, 어머니는 어둠의 문을 지키고 있는 '탈로'의 멤버였다. 굳이 따지자면 아버지는 어둠, 어머니는 빛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벗어나고 싶었던 존재, 어머니는 알고 싶었던, 다가가고 싶었던 존재이다. 하지만 감독은 아버지가 '샹치'를,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을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비춰주었다. 아버지 '웬 우'는 천 년 동안 포기못했던 권력과 '텐 링즈'를 포기하고도 가족을 선택하였다. 그렇기에 어둠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존재는 결코 부정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중국에서는 음양의 조화라는 것이 있다. 오히려 샹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둠과 빛의 상징이

라고 보기보다는 음과 양의 상징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그들의 무술을 살펴보자. 아버지의 무술은 텐 링즈를 통하여 밀쳐내고 팅겨내는 것이 주력 기술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탈로'에서 배운 무술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기술을 받아내어 흘리고 무너뜨리는 것이 주력 기술이다. 즉 밀쳐내는 것과 받아내는 것이 그들의 특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샹치'는 그 두가지 특성을 모두 습득한다. '샹치'가 자신이 누구인가를 똑바로 알게 되는 것은 자기 내면의 음양의 조화를 완벽하게 습득하였다는 것이 된다. 이런 내용을 보노라 하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스쳐지나가곤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쿵푸가 잘어울리기는 한다. 결론적으로 '샹치'에게 아버지는 '음', 어머니는 '양'의 성질을 가진 존재였다.

 

 

  • 그렇다면 선과 악은 어떻게 차별화되어 표현됐는가?

 단순히 '어둠의 문'의 존재들과 '탈로 세계'의 존재들을 비교하여 보면 이해가 빠르다. '샹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일한 특성이 많은 인물들이다. 똑같은 인간이고, 가족이었으며 샹치를 사랑하였다. 하지만 이계의 존재들은 그 모습부터가 다르다. '탈로'의 존재들은 신비로우며 영엄하게 생겼지만 '어둠의 문' 존재들은 징그럽고 잔혹하게 생겼다. 그들이 숭배하는 '용'과 '다크 드웨인'의 모습이야 말로 선과 악의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날아다니는 것을 제외하면 그들에게 공통점이란 없다.

 

 왜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지만 이계의 존재들은 그렇지 못한가? 인간에게 선악이란, 정의란 완전히 확립시키고 구분지을 수 없지만 이계의 존재들은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크 드웨인에게, 용에게는 사연도 없다. 단지 누가 주었는지도 모를 본분을 그들이 다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자비하다.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선과 악이 아닌 음과 양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소감

 

 아무쪼록 재밌게 봤다. 새로운 페이즈를 맞이하는 마블은 그 전 세대와 엮어내기 위해서 계속해서 아이언맨과 헐크, 캡틴 마블, 닥터스트레인지 등을 등장시켜 마블 팬들의 팬심을 자극하며 친근감을 부여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탈로'의 세계라던지 다크 드웨인이라던지의 재질은 마블 세계관이랑 그렇게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고 느꼈다. 지구에 속하지만 오히려 우주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피조물들과 비슷했다. '와칸다'는 기술이 진보되도 지구에 있는 곳이라고 상상이 되기야 했다만 '탈로'는 썩 그렇지 못했다. 너무 판타지였다. 그래도 액션은 굉장히 흡족하였다.

 

 이런 특성들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색을 굉장히 선명하게 뽑아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샹치의 색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지가 되기 때문이다. 근데 너무 튀니까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아마 다른 영웅들과 세계관을 공유하고자 한다면 그래도 잘 융화되는 색조로 조절되야할 것 같다. 

 

 

 

▶한줄평 

 

아직은 미달이지만 이제 대중들은 우월함보다 본연의 성찰을 추구하려고 한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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