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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가이> - 숀 레비

by 대담한도약 2021.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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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가이(2021)


무법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낸 가상현실게임 GTA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고 행할 수 있는 범죄가 만연한 게임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게임 속에서 NPC들이 지성을 가지게 된다면 어떠할까? 라는 상상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가이'는 자신이 사는 '프리 시티'라는 도시에서 은행원 역할을 맡은 NPC이다. 출근을 할 때는 항상 설탕과 프림이 똑같이 들어간 커피를 주문하고, 주민들에게 말을 걸 때는 항상 똑같은 대사를 한다.

좋은 하루 되지 마세요. 최고의 하루가 되세요!
(Don't have a good day. Have a great day!)

매일같이 범죄와 사고가 일어나는 이 도시에서 모든 NPC는 물론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현상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헬리콥터가 추락하여 건물을 박살내도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자신에게 총을 쏘거나 차를 들이박아도 신경쓰지 않는다. 가이가 출근하는 은행에서는 매일같이 은행강도가 들이닥치며 가이를 발로 짖밟고 총을 쏘아대며 돈을 훔쳐간다. 가이와 그의 친구이자 은행의 서큐리티인 '버디'는 이러한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능숙능란한 전문가들이다.

가이는 언제나 자신이 어딘가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하며 여가수가 부르는 팝송을 흥얼거리는 어떠한 형태의 아리따운 이상형을 만나기를 염원하며 지낸다. 그러한 그가 '밀리'라는 플레이어를 마주치게 되고, 그는 NPC는 결코 선글라스를 낀 플레이어들과 말을 섞으면 안된다는 그들만의 불문율을 깨고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밀리'에게 접근하기 위해선 그는 자신도 그들처럼 선글라스를 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곤 은행을 들이닥친 강도의 선글라스를 뺏어버린다. 그렇게 그는 NPC지만 플레이어와 동등한 권한과 능력을 얻게 되고, '밀리'에게서 '프리 시티'와 NPC의 정체를 알게 된다.


범죄 가상현실게임을 기반으로 유쾌하고 발랄한 코미디 액션을 선사하는 이 영화는 그 내면에 자유의지를 포함하여 세계와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형이상학과 같은 철학적인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스포 주의)


이 영화 속의 게임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 세계'라는 곳과 '플레이어'들은 단지 '가이'와 다른 NPC들을 계몽시키고 그들에게 시련을 던져주는 도구적인 역할에 불과하다. NPC인 그들에게 '프리 시티'가 실은 주인공들의 '프리 라이프'같은 게임의 코드를 베껴서 만든 게임이라니 같은 이야기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단지 살아갈 뿐이다. 그들이 '프리 시티'의 NPC인지 '프리 라이프'의 NPC인지, 나아가 실존하는 생명체인지에 대한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물들의 정체성을 판가름하는 것은 플레이어들이 착용하는 '선글라스'이다. 선글라스를 착용하였으면 현실 세계에서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이고 착용하지 않으면 NPC이다. 그렇다면 이 '선글라스'는 어떠한 특권인가? 그것은 아니다. '선글라스'는 프리 시티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만 손에 쥘 수 있다면 누구나 착용할 수 있는 평범한 도구이다. 하지만 가이를 제외한 그 누구도 단지 선글라스를 착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가이'를 각성시키고 지성인으로서 계몽시킨 것은 무엇일까? 바로 선글라스를 착용한 '밀리'라는 인물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각성하고 성장하는 것을 사랑한다. 가령 <루카>와 <블랙 위도우>, 두 영화가 떠오른다. 물 밖의 세상을 궁금해 한 <루카>의 루카는 알베르토라는 친구를 만나고선 계몽하게 되었다. <블랙 위도우>의 위도우들은 단순한 살상무기로써 자신의 존재를 한정시켜왔지만 해독제를 맞고 나서는 스스로 행동하는 자유의지를 되찾았다. 몰론 예시를 든 이 두 영화는 <프리 가이>의 흐름과는 그 과정과 방식이 다르다. <루카>의 루카는 물 바깥을 나오고도 방황하지 않는다. '이제 무얼해야하지?' 라는 물음이 없이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블랙 위도우>에선 인물이 아닌 해독제를 통해 각성을 하기에 그 계기가 사고방식의 전환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그 이 후 방황하는 인물을 앞으로 나아가게 방향과 추진력을 준 것은 가족, 동료라는 존재를 통해서이다. <프리 가이>의 가이는 선글라스를 통해 단순히 코딩된 NPC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명체로 탈피했다는 것을 본다면 <블랙 위도우>의 해독제와 선글라스를 동일한 오브젝트라고 보아도 무관할 것이다. <블랙 위도우>들의 위도우들과 <프리 가이>의 NPC들은 명령된 것을 벗어난 적 없이 언제나 익숙한 것만 고수했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되찾고도 방황했던 것이다. <루카>의 루카는 특별히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유년기의 아이로 주인공이 설정되었기에 방황할 틈이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프리 가이>의 가이에게 자유를 가져다준 것은 '밀리'라는 귀인의 등장인가 '선글라스'라는 해독제를 향한 욕망인가?

단순히 본다면 분명 그 계기는 '밀리'를 향한 짝사랑일 것이다. 그를 통해 선글라스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블랙 위도우>의 전개방식과 수순이 다른 것이다.

<블랙 위도우> : 해독제 -> 가족, 동료

<프리 가이> : 사랑, '밀리'라는 귀인 -> 선글라스


하지만 이런 수순은 아무래도 자유를 향한 의지와 어떠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필요조건을 먼저 충족하던간에 하나의 결핍은 결코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해독제를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방향과 추진력을 가져다줄 존재가 있지 않다면 끊임없이 방황할 것이다. 게다가 그 해독제 또한 누군가가 죽음을 각오하고 가져다준 기회였다. 또한 사랑하는 '밀리'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선글라스를 끼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았더라면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을 뿐더러 NPC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좌절하였을 것이다.

<프리 가이>의 가이는 선글라스를 얻고는 '밀리'에게 '프리 시티' 세계의 진실을 듣고는 좌절한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단순히 누군가가 코드화하여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것이 정말 나의 생각인가? 이 때 우리는 한 명의 위대한 철학자가 떠오를 것이다. 바로 '데카르트'이다.

데카르트는 의심이 많은 철학자였다. 세계의 진리를 추구하고 탐구하는 이 철학자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심하여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제, 진리를 추구하였다.

어느 날 데카르트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스스로 인식하고 의식하고 있는 것인가?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혹시 이 세상 모든 것이 허상은 아닐까? 자신이 스스로 정의한 '명증성(明證性)의 규칙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세상이 거짓이라는 것도, 자신의 생각이 스스로 의식한 것인지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한한 우울과 회의감에 잠식되었다. 죽고 싶어질 만큼 암울한 그는 신에게 물음을 찾기 시작하였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그러다가 그는 어느 순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사유를 반복한 끝에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거짓일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 모든 순간을 나는 내가 직접 인식하고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그는 심연과 같은 우울감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프리 시티>의 '가이'는 이런 데카르트와 똑같은 회의에 빠졌다. 매일같이 성실하게 일어나 똑같은 커피를 먹고 은행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내가 실은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 NPC라니... 라고 말이다. 그는 친구 '버디'의 집에 찾아간다. 단 한번도 자신의 집을 놀러온 적이 없는 '가이'를 보고는 친구 '버디'는 당황한다. 그리곤 소중한 단 하나뿐인 친구 '가이'의 고민을 진심을 다해 들어준다. 그리곤 말한다.

나는 우리가 어떤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때.
내가 진정한 내 친구가 어렵고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는데.
이 생각이 진짜가 아니라면 뭐가 진짜겠어?

 

친구 '버디'는 '가이'가 선글라스를 껴라고 권유했음에도 미지(未知)가 두려워 그것을 거부하였던 겁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는 데카르트와 같이 당연하지만 비범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지을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던지 할 수 있다. '가이'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는 극복하게 된다. 그리곤 사람들의 힘을 합쳐 '밀리'를 돕고 그들이 자유의지를 되찾도록 한다. 솔직히 필자는 이 영화가 계속 가이에게 '히어로'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평범한 은행원 NPC가 플레이어처럼 행동하고 히어로처럼 시민들을 위해 힘을 쓴다는 것에서 그런 명칭을 부여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내용의 영화에서는 '히어로'라는 인물이 존재하기보단 모두 평범한 하나의 개체로서 생각하여야만이 심층적인 메세지가 와닿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가이'의 생각과 행동을 보면 기승전결 모든 곳에서 '히어로'의 가치관이 생겼다는 순간은 한번도 캐치해내지 못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한 시민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으니까 했을 뿐이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왔을진 몰라도 '용감한 시민상'을 받을만한 짓은 한 적 없다. 이것이 '범죄 가상현실게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시민 모두는 자유의지를 되찾는다. 정립화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 내면에 걸려있던 제약이 모두 해금된 것이다. '프리 라이프'의 세상에서 '가이'는 '밀리'를 향한 사랑을 포기한다. '밀리'는 현실세계의 사람이고 '가이'는 '프리 라이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철학의 끝은 아닐까?

두번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이'가 '파란 셔츠 사내'로 '현실 세계'에서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이다. 그는 범죄도시에 살고 있지만 결코 악행을 저지를 수 없는 선천적인 선인이었다. 레벨업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힘든 길을 택하였는데, 현실 세계 속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가이'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이것에는 하나의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내가 남들보다 특별하고자 하는 것.' 이것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근거이다. 첫째, 남들과는 반대로 선행만을 택하였다는 것. 둘째,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게 레벨업을 했다는 것. 여기서 현실 세계의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경쟁의식이 탑재되었기에 뛰어난 사람을 선망한다. 단순히 레벨업이 빨랐기에 '파란 셔츠 사내'가 유명해졌다면 그것은 오해이다. 현실 세계 사람들은 비교적 레벨업에 열광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NPC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끔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들을 짓밟는 것보다 그들을 관찰하고 소통하는게 더 재밌더라고요."라고 한다. 시작은 '남들과 다른 것'이라는 심리적 요인에서 시작했을지 몰라도 그 나비효과는 선인이 보여주는 선한 영향력이 된다. 이러한 '프리 시티'의 모든 이야기는 단순히 게임 속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 이뤄낼 수 있는 모든 것인 것이다.


이 영화는 엔터테이먼트적이고 코미디한 부분이 많다. 후기들을 보니 어떤 사람들은 오글거리고 몰입이 안되서 너무 재미없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이 영화는 실패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배경이 '게임 속 세계'인데 관객을 그 안으로 초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배경이 그러하다보니 관객이 '프리 시티' 속에 완벽히 녹아들어야만이 그 다음부터 시야가 트일 수 있는데 그러질 못했다.

하지만 완벽히 녹아들어가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면 마치 <트루먼 쇼>를 보고나선 우리의 세상이 혹시 하나의 티비쇼는 아닐까? 라고 가벼운 의심을 했던 것처럼 우리도 사실은 NPC는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오글거리게 들리지는 않았을텐데, 이것은 관객이 얼마나 이러한 설정에 포용적인지 개인 성향에 따른 것이 아닐까 싶다.


▶한줄 평

데카르트는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 단순히 유쾌하고 액션이 많은 영화를 보고 싶어서 택한 영화였는데 이렇게 곱씹을 것이 많을지는 몰랐다. 의외의 수작이라서 굉장히 기분 좋았고, 반면에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너무나 좋은 소재라서 발전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볼거리에 집중하다보니 '가이'라던지 '밀리'같은 인물들의 심리변화라던지에 대한 것이 섬세하지 못한 것 같다. 공감적인 부분에 조금 더 비중을 많이 다룬 것 같은데 그마저 비호감을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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