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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나이트> - 데이빗 로워리

by 대담한도약 2021.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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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나이트(2021)


(원작을 보지 않은 채로 영화를 보고 해석한 글임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예수의 탄생을 기리며 아서왕과 기사들은 원탁에 앉아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아서왕의 조카인 가웨인은 장차 기사가 되기를 바라지만 유흥을 좋아하며 그렇다할 무용담이라던지 전설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때 문을 열고 등장하는 말을 탄 녹색 기사, 그는 피부가 푸른 나무로 되어있었으며, 훤칠하고 단단한 그 기백에 어떠한 기사들도 검을 뽑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나서질 못했다. 그린 나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크리스마스 게임을 함께 참여할까 하오.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치고 명예와 재물을 가져가시오.
단 1년 후에 녹색 예배당에서 나를 만나
내 참격을 똑같이 맞아야 할 것이오.


하지만 그 누구도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 때 주인공 가웨인이 원탁을 뛰어넘어 그 게임에 응하였다. 아서왕은 조카를 위해 친히 자신의 검을 빌려주었고, 그린 나이트의 목을 벤 가웨인은 1년 후 게임의 끝을 짓기 위해 그린 나이트를 찾으러 떠난다.

인간에게 명예란, 재물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선택한 운명 앞에 인간은 무력해질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그린 나이트>는 너무나 평범한 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몸소 경험하는 영화이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웅장한 음악과 적절한 오브제, 미장센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렇다할 액션씬은 존재하지 않으니 그보다는 철학적인 사유, 고뇌를 경험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였으면 좋겠다.



(스포 주의)


  • 가웨인은 어떠한 인물인가?

그는 기사도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정말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신분이 낮은 미셀이라는 애인과 함께하며 유곽을 자주 돌아다니는, 기사를 꿈꾸지만 개인 검도, 갑옷도 없으며, 모험 또한 하지 않는 그런 하찮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혈통이 출중하였으니, 어머니는 마녀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서왕과 남매지간이었다. 타고난 핏줄이 출중하나 그의 행실은 그러지 못하였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다'고 하였는가, 하지만 가웨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명언이다. 그는 기사가 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인물이다. 그에게 기회를 주어준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혈통이었다. 그린 나이트에게 대적하겠다는 한순간의 결심이었을지 모르나 왕이 친히 검을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검도 없는 자가 무턱대고 대적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의 결심에 도움을 준 것도 아서왕의 호의와 관심이었기 때문이다.

  • 그린 나이트는 어떠한 인물인가?

그에겐 이름도, 행적도 없다. 단지 그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도끼를 들고 잔치장에 나타난 불청객일 뿐이었다. 그는 왜 크리스마스 게임에 참여하겠다고 하였는가? 왜 도끼를 내려놓았으며 기꺼이 자신의 목을 건네주었는가? 크리스마스 잔치가 열릴 때 장면은 마녀들이 주술을 읊는 장면과 함께 교차편집된다. 마녀들의 주술을 통해 새싹이 터 자라나는데, 이 장면을 통해 관객은 그린 나이트가 마녀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피조물임을 유추할 수 있다. 즉, 그린 나이트는 가웨인의 어머니가 만들어내었고 그를 잔치장으로 보낸 것이다.

  • 그린 나이트를 보낸 가웨인의 어머니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자신과 남매지간인 아서왕을 죽이거나 위협하기 위해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목을 걸고 하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 그린 나이트를 보내었다는 것인데, 명예와 재물을 선사하는 이 게임은 분명 자신의 아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보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바램대로 '그린 나이트의 목을 벤 기사'로 명성을 날렸다. 아서왕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앉히기 위해 무용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 그렇다면 왜 그린 나이트는 하필 크리스마스에 나타났는가?

이 질문은 곧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바와 유사하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죽게 되었는데, 그가 여지껏 우리에게 '신'으로 추앙하고 높이 받드는 것은 결국 그가 자신의 끝이 어디인지 앎에도 지상의 인간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단지 '공자'와 같은 위대한 선인에서 그쳤을 것이다.

왕국 사람들에게 그린 나이트라는 존재는 위협의 대상이었다. 이질적이고도 압도적인 아우라를 품기었던 그는 어떤 행동없이도 기사들이 칼을 뽑아들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대적한 자가 바로 가웨인이었으며, 가웨인은 장차 자신이 그린 나이트의 목을 베면 1년 후 자신 또한 목이 베일 것을 알았음에도 게임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예수에게는 미치지 못하나 어쨌든 그는 그렇게 명예와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가웨인은 정확히 1년 뒤 크리스마스 날 자신의 목을 내어주러 그린 나이트를 찾아 녹색 예배당에 도착하였다. 크리스마스가 기념일로 된 이유는 예수가 탄생하고, 행하고, 운명대로 죽었기 때문이다. 가웨인 또한 그러하다. 그린 나이트의 목을 베어 명예로운 기사가 되었고, 모험을 떠났으며, 결국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을 내밀었다. 그가 신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은 아니나, 그는 마을로 돌아가 쾌락과 유희를 택할 수 있었음에도 결국 명예를 위해 죽음을 택하였기에 마을 사람들은 영원히 그를 위대한 기사로 기릴 것이다.

이로써 영화를 구성하는 어느 정도의 배경은 다 파악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가웨인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목도할 수 있었던 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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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만났던 존재들과 여정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첫번째 챕터에서 강도소년을 만났다. 그는 가웨인에게 녹색 예배당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하지만 여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방향을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웨인은 감사표현 하나 하지 않고 먹고 떨어져란 식으로 동전 한 닢을 주고는 자리를 뜬다. 그것이 괘씸하였던 소년은 가웨인의 무기, 말, 식량 등 모든 것을 약탈하고 떠난다. 이 때 어머니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마법의 녹색 허리띠를 부적처럼 주셨는데 그것 마저도 빼앗겨버리고 만다. 강도소년은 전쟁으로 형제를 잃은 불쌍한 떠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런 그가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감사표현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가웨인은 응징당한다. 기사로서 기사도를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를 배운 것이다.

여기서 마법의 녹색 허리띠가 제 역할을 하였는가 못하였는가에 대하여서는 의견이 갈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웨인은 목숨을 건지긴 하였으나 강도들의 위협에 꼼짝없이 노출되어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리띠가 제 역할을 하였는가 못하였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순전히 부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챕터에서는 주인없는 오두막에서 잠을 자다 목이 잘려진 한 영혼을 만난다. 그녀는 연못에 빠진 자신의 목을 가져와달라고 하는데, 가웨인은 자신이 얻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영혼은 말한다. 무엇이 달라지죠? 첫번째 챕터와는 다르게 가웨인은 기사도에 따라 연못에 들어가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해골머리를 가져와준다. 가웨인이 연못에 들어갔을 때 연못 속은 갑자기 무척이나 붉은 색을 발현하는데, 이 작품에서 녹색은 생명과 부패, 자연을 상징하며 붉은 색은 피, 탐욕, 욕구 등을 상징한다. (이것은 네번째 챕터에서 저택의 부인의 대사로부터 알 수 있는데 이는 독자가 이 영화를 다 보았다는 가정 하에 언급없이 진행하겠다.) 아마 연못이 붉게 보였던 이유는 과거 영혼의 목을 베었던 한 사내가 그녀가 동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생명을 앗아갔던 것이 부정한 탐욕이었기에 연못이 더럽혀졌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가웨인은 여기서 인간의 부정한 탐욕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영혼에게 목을 가져다준 대가로 강도소년이 가져갔던 도끼를 돌려받는다. 첫번째 챕터와는 다르게 기사도를 행하였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가웨인은 배웠다.

세번째 챕터는 거대한 거인을 만난 것이다. 가웨인의 여정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붉은 여우가 그를 따라왔다. 여우와 함께 녹색 예배당으로 향하던 그는 아무것도 제대로 먹질 못해 탈진상태에 이르게 된다. 쿵쿵거리는 발자국을 따라가니 수많은 거인들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고 가웨인은 불쌍한 나그네를 어깨에 태워줄 순 없냐고 부탁한다. 거인은 가웨인에게 손을 뻗는데 이것이 위협인지 호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우는 울음소리를 내어 거인의 행동을 저지하였고 신비롭게 거인들은 여우의 울음소리에 맞춰 똑같이 하울링을 하였다. 수동적이기는 하나 가웨인은 기사로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함을 배웠다.

여우는 가웨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여우는 방관자이다. 무력하기는 하나 여우는 강도에게 위협을 당할 때에도, 영혼의 오두막에서 해골을 건져올 때에도 저 멀리서 가웨인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거인이 손을 뻗을 때 그 행동을 저지하였는가? 첫째, 거인으로부터 가웨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둘째, 가웨인이 거인의 도움없이 여정을 다하기를 바라여서. 어떤 이유로든 여우는 가웨인의 편으로 보여진다. 만일 후자가 그 이유였다면 어째서 그것이 가웨인에게 도움이 안되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는가? 그것은 아마 용맹한 기사라면 누군가에게 불쌍하게 도움을 받지 않길 원하여서 일 것이다. 여우는 끝까지 가웨인과 함께 한다. 즉 가웨인의 죽음을 함께한다. 그의 죽음은 명예로워야한다. 용맹하여야 한다. 거인의 손뻗음이 호의던 위협이던간에 가웨인의 죽음에 있어 그것은 필요없다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여진다.

네번째 챕터는 풍요로운 저택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서 저택의 주인은 눈치보지 말고 원하는 만큼 마음껏 쉬었다가라고 한다. 그리곤 기이한 제안을 한다. '나는 사냥을 떠나 바깥에서 얻은 것들 당신에게 주겠소. 당신은 저택 안에서 얻은 것들을 나에게 주는 것이오. 어떻소?' 가웨인은 당황하며 말한다. '저는 녹색 예배당으로 가는 길인데 전리품은 필요 없어요.' '내 말은 집으로 돌아갈 때 챙겨가라는 것이오.' '하지만 저택 안에 있는 것은 모두 당신의 것인데 어떻게 그리 될 수 있나요?' 가웨인은 주인이 사냥을 떠난 동안 저택에서 부인과 눈먼 장님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부인은 가웨인에게 하트모양의 책과 초상화를 선물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가웨인을 유혹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른 아침 가웨인의 침실에 들어와 말한다. '어젯 밤에 왜 저를 찾아오지 않으셧죠?' 가웨인은 말한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곽이나 돌아다니며 기사도라곤 하나도 몰랐던 그에게 기사다운 절제력과 이성적인 판단력, 도덕성이 생긴 것이다. 부인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녹색 예배당을 향하는 가웨인에게 강도에게 빼앗겼던 마법의 녹색 허리띠를 선물한다. 어떠한 위험으로부터도 보호해주는 마법의 허리띠를 말이다. 다가오는 죽음이 두려웠던 가웨인은 그것을 탐한다. 스크린에는 부인의 의미심장한 행동과 대사, 가웨인의 거친 호흡과 움직임이 포착된다. 부인은 가웨인에게 허리띠를 주고 떠나는데 가웨인의 손에 쥐어져있는 허리띠에는 정액으로 보이는 하얀 액체가 묻어져있다.

우리는 여기서 마법의 녹색 허리띠의 진짜 정체를 알아낼 수 있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마법은 쾌락을 탐하는 인간의 마음을 의미했다. 쾌락을 탐함으로써 우리는 위험이라던지 죽음과 같은 필연으로부터 자신을 회피하고 외면한다. 쾌락은 도망을 의미한다. 어머니가 죽음의 여정을 떠나는 아들에게 허리띠를 준 이유도 이와 같다. 쾌락을 위해 그린 나이트를 마주하지 말고 무용담만 얻고 돌아와 왕이 되어라는 것이다. 여정을 통해 기사도를 배운 가웨인이지만 죽음 앞에선 나약해졌고 도망치고 싶어 허리띠와 쾌락을 탐했다. 저 멀리서 장님이 그 모든 관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비록 장님은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가웨인은 스스로가 수치스러워 저택을 도망치듯이 달아났다.

'어디 가시오!' 사냥에서 돌아온 저택주인이 물었다. 그는 서로 얻은 것을 교환하자고 하였고 가웨인은 얻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진심이었을까? 편안함과 안락, 저택부인의 유혹, 그리고 허리띠를 얻은 그는 거짓말은 한 것이다. 하지만 저택주인은 다 안다는 눈빛으로 가웨인에게 입맞춤을 하고는 자신이 포획한 여우를 선물하곤 저택으로 돌아갔다. 편안함과 안락함, 저택부인도 결국 저택주인의 것이며 따지고 보면 허리띠 또한 원래 가웨인의 것이다. 부인이 그려준 초상화는 저택에 두고 왔으니 사실 가웨인이 저택에서 가져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저택 주인이 많은 것을 묻지 않고 돌아간 것은 아마 가웨인을 테스트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웨인은 저택주인의 것을 무엇도 빼앗지 않았다. 사냥의 전리품, 부인의 사랑, 저택의 물질들 어떤 것도 말이다. 물론 허리띠를 받을 때의 자신의 행동은 분명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달아났다. 가웨인이 쾌락만을 추구했던 옛날의 작자였다면 주인이 제안한 게임을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공수래 공수거'라고 하던가 죽음을 각오한 자라면 어떠한 재물도 필요없다. 가웨인의 행동은 어느 정도 모순적이다.

마지막 챕터에서 가웨인은 녹색 예배당으로 가는 강줄기에 도착한다. 여우는 가웨인을 저지한다. 그곳으로 가면 절대 좋은 결과란 없을 것이라며 무용담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가라고 한다. 가웨인은 녹색 예배당으로 가겠다고 하지만 여우가 말한다. '하지만 네 허리에 있는 허리띠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거 같은데?' 가웨인은 당황하지만 여우를 쫒아내곤 그린 나이트에게 도착한다.

그린 나이트에게 도착한 그에겐 이중적인 모습이 있었다. 그는 기사가 갖추어야할 알맞은 기사도 정신을 배웠으나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녹색 허리띠를 둘러매고 왔으니 말이다. 나약한 모습과 용맹한 모습이 공존하는 그는 그린 나이트에게 묻는다. '정말 이게 끝이란 말이냐?' '그럼 이 다음엔 무엇이 있지?' 가웨인이 녹색 예배당로 온 이유가 명확해졌다. 그는 명예로운 죽음을 위해 녹색 예배당에 도착한 것이 아니다. 결과로써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써 명예를 얻고 돌아가기를 바랬던 것이다. 나약한 그에게 명예란 살아있음으로써, 쾌락을 즐길 수 있어야만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는 도끼를 휘두르려던 그린 나이트에게 몇번이고 외친다. '잠깐!' 그리곤 달아난다. 어째선지 달아나는 길에는 잃어버렸던 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마을로 돌아가 그는 왕이 되고 아들을 낳고 미천한 미셸을 버리고 공주를 부인으로 둔다. 하지만 아들이 죽고, 백성들에게 버림받고, 공격받아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 때 가웨인은 허리춤에 있던 녹색 벨트를 푼다. 녹색 벨트는 진물 가득한 그의 상처를 뚫고 몸에서 풀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웨인의 목이 떨어져 나간다. 죽음을 피해 마을로 달아났지만 죽음은 잠시 외면할 수 있되 피할 수 없는것이 인간의 유한함이다.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자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허리띠를 푼 것이다. 신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독극물과 진물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쾌락을 상징하였던 허리띠는 부패, 죽음, 진물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이 때 획득한다. 기사에게 쾌락은 즉 부패이다.

마을로 달아난다는 것은 사실 가웨인의 상상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어머니의 바램, 여우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마녀이고, 인간의 말을 하는 여우가 가웨인의 여정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유추하여 여우와 어머니가 동일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웨인은 그린 나이트에게 다시 외친다. '잠깐!' 그리곤 녹색 허리띠를 풀고는 준비되었다고 말한다. 그린 나이트는 말한다. '잘했다 용맹한 기사여. 자 이제 네 목을 치겠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가웨인은 죽었을까? 죽었을 것이다. 죽음에 다다르자 여우가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거인도 몰아내는 마법의 여우가 가웨인 한명 저지못할 리가 없다.

그린 나이트를 만나는 마지막 챕터는 운명을 마주하는 가웨인이 쾌락과 명예의 길에서 갈등하는, 즉 범인과 기사 중에서 자신을 결정하는 마지막 기로였다. 그리고 용감하게 그는 운명을 마주하고 여정을 끝마쳤다.

  • 강도에게 빼앗겼던 도끼, 허리띠는 무엇이었을까?

첫번째 챕터에서 기사도정신이라곤 전혀 없었던 그는 말, 도끼, 허리띠를 모두 빼앗긴다. 도끼는 영혼의 목을 되찾아주고 기사도 정신을 배우자 되찾을 수 있었다. 도끼는 처음부터 끝까지 운명과 죽음을 상징하였다. 운명이 정해졌던 그린 나이트와의 첫만남,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던 마지막 만남까지, 목을 베는 도구로써 도끼는 언제나 가웨인과 함께하였다. 하지만 그린 나이트가 주었던 1년이란 기간동안 도끼는 나무상자 속에 쳐박혀있었다. 그리고 그는 술집에서 무용담이나 풀며 쾌락을 만끽했다. 그렇기에 그린 나이트는 예배당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나는 너에게 용맹함을 기를 시간을 1년이나 주었다.' 하지만 도끼를 외면했던 그가 용맹함을 기를 수 있었을 리 없다. 진정한 용맹함은 운명과 죽음을 마주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허리띠는 도끼와 반대적인 성질을 가진다. 물론 도끼도 녹색, 허리띠도 녹색이다. 도끼는 녹색의 상징 중에서도 자연의 성질을 띄는데 여기서 자연이라는 것은 탄생과 죽음은 동의이음어라는 것이다. 허리띠는 녹색의 상징 중에서도 앞서 말했던 부패를 상징한다. 쾌락은 곧 부패이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강도소년에게 도끼와 허리띠를 동시에 잃어버린 것은 가웨인의 욕망이 장차 녹색의 어떤 상징에 다다를지 미지로 두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역설적인 것은 녹색과 붉은 색은 결코 정반대의 의미가 아니란 것이다. 인간이 탐하는 붉은 피와 빨간 유혹들은 인간의 태생적인 욕망이다. 녹색에는 신록의 의미도 있지만 부패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또한 존재한다. 거시적으로 녹색의 운명이라는 상징을 잘 마주할 경우 명예를 얻을 수 있지만 인간이 탐하는 붉은 색, 즉 욕망에 명예가 포함될 수 없다고는 못한다. 그리고 녹색의 부패에는 결국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결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저택의 부인을 말한다. 인간의 붉은 색이 지나간 자리에 녹색이 뒤덮는다고 말이다. 즉 인간의 욕망이 지나간 자리에 신록 또는 부패가 자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타당할까? 붉은 색은 결코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붉은 색은 중립적이다. 욕망이 긍정적일 경우 그 뒤로는 긍정적인 신록이 뒤따를 것이며 쾌락과 같은 부정적인 욕망일 경우 부정적인 부패가 뒤따르는 것이다. 이 영화는 녹색이 메인 컬러가 아니다. 오히려 녹색은 영화의 메세지에 있어 절대적으로 맥거핀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하나같이 붉은 색 배경으로 되어있다.

그린 나이트 포스터

녹색이 정말 중요한 색이었다면 포스터에서도 또한 녹색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의 제목은 <그린 나이트>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인간인 가웨인이다. 포스터에서 붉은 색을 사용한 이유는 이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녹색의 그린 나이트가 주인공이 아니라 붉은 색의 인간, 가웨인이 주인공인 것이다. 즉 이 영화는 녹색의 진정한 뜻을 헤아리자는 내용이 아니다. 건전한 욕망, 올곧은 붉은 색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보아야 올바를 것이다. 녹색은 단지 붉은 색 다음에 올 뿐이다.


14세기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주인공이 기사임에도 이 작품에는 그렇다고 할만한 액션씬이 단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가웨인이 멋진 기사로 설정된다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음미하기에 방해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이기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붉은 색을 모조리 경험하고 녹색을 모조리 깨달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웨인은 여정 중에 단 한번도 자신을 기사라고 소개한 적이 없다. 강도 소년도 기사라고 스스로 파악했고 애초에 영혼과 저택주인은 말하기도 전에 이미 기사라고 그를 알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가웨인의 진짜 꿈은 기사가 아니었다고 보면 어떨까? 가웨인이 기사를 꿈꾼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영화의 극 초반 부분이다. 마을사람들이 가웨인보고 기사냐고 묻자 가웨인은 '아직은요!'라고 답한다. 그다지 추진력도 없고 꿈에 열정도 없던 그가 '기사'가 된 이유는 어머니의 계략, 아서왕인 삼촌과 어머니의 기대일 것이다. 무언가 얼떨결에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기사가 된 그는 기사가 될 준비도 안됐는데 기사의 여정을 겪게 되어 온갖 수모를 겪는 그런 영화이다. 가웨인이 진정으로 기사처럼 보일 때는 극 후반에 담담하게 자신의 목을 베어라고 최종 각오를 다질 때 뿐이다.

어떤 삶을 택할지는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가웨인의 상상 속에서는 부정적인 욕망을 택했다가 한순간은 좋았을지 몰라도 최후는 좋지 못했다. 붉은 색과 녹색의 의미를 살펴본다면 이 영화는 권선징악의 내용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흥부놀부같은 그런 이야기보다는 흑백논리가 없으며 오히려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만 같다. 독자는 그린 나이트가 목을 베는 순간 공포에 떨며 달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오히려 달아다는 것이 평범한 사람이다. 녹색 허리띠를 소중히 여기어 단 한순간도 놓고 싶지 않은 것이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범인이 최종적으로 비범한 결정을 내렸기에 나는 한줄 평에 '인간이 예수가 되기로 하였다' 라고 적었다.

+,<시학>에서 말하기를, 희극은 열등한 자가 주인공이 되어 성장하는 것이며 비극은 고매한 자가 예상치 못한 운명 아래 절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주인공이 죽어야 끝나는 이 영화는 비극일까? 희극일까? 아스토텔레스는 희극이라고 할 것이다.

+ 죽음을 상상할 때마다 가웨인은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참한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진정한 죽음을 위해 떠나는 가웨인,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떠오른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는 인간이 죽음을 마주하여야만이 삶과 실존을 직관할 수 있다고 하였다.

◇ 한줄 평

붉게 현현한 욕망은 인간의 유한함 속에 갇히다 녹색을 진실로 목도하고 예수가 되기로 하였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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