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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스티븐 스필버그

by 대담한도약 202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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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2003)-스티븐 스필버그

 

이동진 평론가 :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경쾌하게 달아나는 스필버그의 경공술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실존인물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실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해당 작품의 이름인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1980년 저서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따온 것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 (1980)


 어떤 이들은 이런 영화는 범죄자의 이력에 정서를 주입하여 그의 횡보들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려고 한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다. 최근 리뷰했던 <아이, 토냐>는 더욱이 그러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아이,토냐>에 비해 그런 평가가 덜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그럴까? 피해의 규모로 따진다면 토냐보단 오히려 프랭크 쪽이 훨씬 막대한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것은 감독의 연출과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스포 주의)


 

 

 15살의 프랭크가 작 중 가장 환하게 웃으며 매번 동경해왔던 최고의 이상향은 화목한 가정, 사이좋은 부모님들의 모습이었다. 프랭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 안 거실에서 춤을 즐겨 추셨다. 춤은 대상간의 합일이며 결속이며 상대방 없이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행위이다. 프랭크는 그것이 즐겨 행해지는 가정 속에서 행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여 국세청에서 쫒기기 시작하고, 어머니의 외도를 알아차리게 되며 프랭크의 세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선은 아마 아래의 씬이 아닐까 싶다. 바로 아버지가 아침 일찍 프랭크를 데리고 체이스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가는 장면이다.

 

체이스 은행 앞에서 운전기사로 변장한 프랭크


"왜 양키팀이 항상 이기는지 알아?"
"미키 맨틀이 있어서요?"
"아니, 다른 팀들이 유니폼에 기죽기 때문이야."

 


 아버지의 예측처럼 애버그네일 부자의 유니폼과 기세에 압도당한 체이스 은행장은 그들을 귀한 손님으로 착각하여 직접 문을 열어주러 나온다. 프랭크의 정장은 동정할만한 거짓 사연과 목걸이로 여사장이 가게문을 일찍 열도록 꼬셔내어 빌린 것이었는데, 프랭크는 이 날의 기점으로 세상의 원리는 항상 진실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의 심리와 사회구조의 빈틈을 파고든다면 하루 아침만에 전쟁 영웅의 아들이 될 수도, 돈 많은 신사의 운전수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양키스팀이 유니폼만으로 우승을 거머쥔 것은 아닐 것이다. 프랭크가 언급한 '미키 맨틀'이라는 선수는 월드시리즈 최다득점, 최다홈런, 최다타점, 최다볼넷 등의 기록을 보유한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홈런 15위를 기록한 전설의 강타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인간 사회에 있어 복장과 기세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몸소 일깨워준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사회는 수많은 약속들로 구성되어 있다. 화폐는 약속의 결정체이다. 반짝이는 돌덩이가 가치를 갖게 되고 팔랑거리는 종이 조각이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은 순전히 약속때문이다. 이 밖에 유니폼은 물론 특정 직업이나 역할의 행세들도 모두 은밀한 약속들이 다 서려져있다. 약속은 기계같은 계약이 아니기에 과거는 현재보다 훨씬 허술하였고 완전히 속이지 못할 것도 없다. 물론 결국 발각되기 마련이다.

 

불어 반 대리 교사 행세를 하는 프랭크

 

가정난으로 이사를 간 프랭크는 새로운 학교에서 자신의 복장차림때문에 다른 학생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그는 그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활용해 즉석으로 마침 병결 중인 선생의 대리 역할을 자행하였는데, 무려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야 그 행위가 발각되어 부모님이 호출되었고 아버지는 되려 프랭크를 보곤 자랑스러운 미소를 보인다.

프랭크의 재능은 작 중 초반에 어머니의 외도를 눈치챌 때나, 여학생의 거짓 조퇴사유를 도와줄 때나, 자신이 연기할 때 눈치챌 수 있다. 그는 뛰어난 추리력과 관찰력, 통찰력을 보유하였고, 이를 기반한 월등한 응용, 활용력을 구사하는 비범함이 있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것이 여태 우연이 아닌, 순전한 그의 능력이었다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이런 비범한 그도 결국 15살에 불과한 청소년이다. 자신의 안락한 보금자리는 더이상 없었다. 변호사가 들이닥쳤고 그는 선택하여야만 했다. 모든 것이 정리된 상황 속에서 양육권이 누구에게 갈지는 프랭크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프랭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할 뿐, 프랭크가 필요하다거나 자신에게 와라는 등 하지 않았다. 변호사는 프랭크에게 '이건 시험이 아니야. 겁먹지마 틀린 답은 없단다.'라고 하였는데 이것들은 프랭크에게 보금자리의 완전한 붕괴를 입증하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프랭크는 도망쳤다.



인간에게 주거란 무엇인가? 집이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상징의 철학적인 질문은 우리가 프랭크의 가출을 이해하는데에 큰 도움이 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 인간은 집에 살면서 비로소 평화를 누리게 된다.

바슐라르(Gaston Bacherlard.) : 집은 세계 안에 있는 우리의 일부, 우리가 경험하는 최초의 세계이다.

보르노(Otto Friedrich Bollnow) :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불가결한 조건이다. 집은 내적으로도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보르노는 거주공간이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이라고 보았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부모님의 이혼은 프랭크에게 단지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세계가 무너지는 것과도 일치하였다. 이 영화는 거시적인 관점에선 사기꾼의 화려한 활보 속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은밀한 고독함이 주제가 되겠지만 그 고독함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살펴본다면 그 속엔 바로 '집'이라는 것이 있다.

조종사로 변장한 프랭크


 수표란 본인의 신용이 바탕이 되야하는 물건이다. 유니폼의 힘을 아는 프랭크는 이를 활용하여 복장을 구비하여 맘껏 찍어낸 위조수표를 쓰고 다녔다. 그는 여자는 물론, 과거 성공한 남자의 상징인 '캐딜락'까지 모든 것을 누린다. 가족을 사랑한 프랭크는 종종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도 만나뵙기도 하였는데, 그는 계속하여 부모님의 재결합을 응원하였는데 이를 보아 자신네 가정의 붕괴는 아마 부의 추락에서 왔다고 짐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리 교사를 연기했던 프랭크를 아는 아버지는 아들이 부조종사가 되었다고 단지 속아주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아는 것은 아버지 밖에 없다. 이 후 FBI에서 위조 수표범인 프랭크를 쫒는 칼 핸리슨이 등장한다. 이렇게 두 인물은 프랭크의 진짜 정체를 아는 유일한 인물이 되는데 이 두 인물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 결말에서 프랭크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왜 그가 선택되었는지는 뒤에서 서술하겠다.

"유니폼만 가지고 베팅하는 사람은 없겠죠."


프랭크는 LA에서 칼에게 붙잡힐 뻔하고 그 후 크리스마스 이브만 되면 칼에게 연락하는 습관이 생기게 된다. 그는 아버지와 더불어 유일하게 자신을 프랭크 애버그네일로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어째선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그가 자신을 체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랭크는 자신의 행동들에게 망설임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칼은 그런 프랭크에게 말한다. '전화 걸 사람이 없었겠죠!' 칼은 프랭크의 고독함을 눈치챈 것이다. 승리를 향한 확신을 가진 칼은 기뻐한다.

프랭크의 고독함을 눈치챈 칼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꾸며도 보고, 이탈리아 명품 옷을 입고 재벌 행세도 맘껏 해본 프랭크는 우연히 병동에서 호감가는 여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간호사인 그녀의 곁에 머물기 위해 하버드출신 소아과 의사로 변장하게 된다.

닥터 코너스로 변장한 프랭크


 그는 사랑하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맘먹는다. 조종사에서 의사가 되고, 또한 결혼을 하여 누군가와 정착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다. 조종사는 직업의 특징 상 한 곳에 머무를 수 없고 그렇기에 그의 범행 수법과 매우 조합이 좋았다. 그러나 한 여자를 위해 의사가 되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누려본 그가 이제는 종착지에서 보금자리를 꾸리기 원한다는 의미가 된다. 앞서 주거에 관련한 철학자들의 말들을 인용해놨는데 그 중에서 보르노의 '집은 내적으로도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는 작 중 이러한 대목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방황하던 그는 이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는 장인 어른을 따라 변호사가 되기 위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 세 번째 직업을 가지게 된 그는 또 한번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부모님 두 분을 결혼식에 초청하려고 한 그에게 아버지는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둘의 재결합이 목적이었던 프랭크는 그것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동안의 모든 횡보를 멈추기로 한다.


 아버지는 멈추겠다는 아들에게 오히려 'FBI는 너를 잡지 못할거다.'라며 아들의 사기꾼 행위를 계속 독려하려고 한다. 이를 보았을 때 이미 세상의 원리에서 허점을 파악한 아버지는 그것을 잘 응용하고 있는 아들의 행동을 그것 또한 또 다른 성공이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커다란 실패를 경험하며 내적으로 무언가 결핍되었던 것이다.


프랭크는 멈추고 싶어한다. 보금자리를 꾸리거나 돌아가거나, 무엇이 되었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내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거짓된 이름으로 그것을 가능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되돌아 오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는 비유하자면 기찻길을 이탈하여 폭주하게 된다. 이것은 결말에서 왜 프랭크가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FBI인 칼에게 순순히 붙잡히게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FBI를 피해 결혼식에서 달아나는 프랭크 본명을 스트롱에게 밝힌다.


결혼식 당일 그는 FBI를 피해 달아나게 되고 이틀 뒤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스트롱에게 하며 자신의 본명을 알려준다. 약혼녀였던 스트롱은 세번째로 자신의 정체를 알아봐주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보금자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그것에 베팅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베팅에서 그는 패배하였다. 스트롱이 사랑한 남자는 28살의 닥터 코너스였지 16살의 어린 프랭크 애버그네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틀 뒤 마이애미 공항에 프랭크가 등장할거라는 정보를 FBI에게 전달한다. 아버지도 아닌, 약혼자 스트롱도 아닌, 왜 칼에게 갔는지 이제는 이해가 갔을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난 프랑스에서


그는 이제 위조 수표가 아닌 진짜 수표를 만들고 다닌다. 그것엔 어마어마하게 큰 기계가 필요했고 그것을 과거 부모님의 첫 만남이 이뤄지게 된 냉동 케익의 존재도 모르는 프랑스 몽트리샤드 마을에 배치한다. 그리고 드디어 꼬리를 잡힌다. 매사 거짓으로 세상을 살아왔던 그는 24명의 경관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바깥에 있다는 칼의 경고를 계속해서 의심한다. 하지만 칼은 프랭크를 위해 진실을 계속 말해주었고 프랭크는 그런 그의 진심에 스스로 수갑을 찬다.

 

거짓을 응원한 아버지
거짓된 자신만 사랑한 스트롱
진실만을 말하는 칼



24명의 프랑스 경관은 프랭크를 프랑스 감옥에 수감시킨다. 4년의 노력 끝에 칼은 프랭크를 미국으로 송환시키는데 성공하는데 이것에는 아버지와 연락을 하게 해준다는 약속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고로 사망하였었고 프랭크 애버그네일을 사랑하는 하나 뿐인 존재가 사라지자 프랭크는 경이로운 탈출실력을 발휘하여 달아나고 어머니가 사는 과거의 집으로 간다.

재혼하여 딸아이를 낳아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어머니



어머니는 자신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수 없었다. 그 자리엔 이미 새로운 아이가 자신을 대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프랭크는 어머니를 사랑하여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아 재빨리 체포해달라고 애원했다.

그 후 수감된 감옥에서 위조 수표 판별에 엄청난 재능을 보인 그는 FBI와 칼의 제안을 받아 감옥생활 대신 요원으로서 수감생활을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드디어 보금자리에 정착하나 싶었던 프랭크는 퇴근하다가 조종사복을 보고 또다시 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이번 가출은 달랐다.

가출하는 프랭크를 쫒아온 칼


가출하는 프랭크를 쫒아온 칼은 이미 그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붙잡진 않을테니 월요일까지 돌아오라는 칼. 그걸 어떻게 아냐는 프랭크의 질문에 그림과 같이 말한다.

"아무도 널 쫒지 않아."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고 중요한 대사인데 프랭크에 대한 칼의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대중들은 대부분 이 대사를 중요시 여기는 것 같은데 여운은 있을지 몰라도 필자는 개인적으로 붙잡진 않을테니 월요일날까지 돌아오라고 하는 대사에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하는 칼. 프랭크의 능력은 이미 인정하였고, 체포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음에도 그를 믿음과 동시에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도 주지 않았던 필요의 영역을 보여준 것이다.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프랭크는 응답하였고. 되돌아왔다. 수많은 직업체험기와 시련을 넘어 그는 결국 '프랭크 애버그네일'로 돌아왔다.

 

보르노(Otto Friedrich Bollnow) :
인간은 진정으로 거주하지 못하면 영원한 망명자일 뿐이다.
인간은 영원한 망명자지만 집은 평화와 안정의 공간이다.


 끊임없이 망명자 생활을 전전했던 그는 그의 유니폼이 어땠건 내면이 더욱이 가난했다. 유니폼은 거품에 불과하다. 그는 가출생활을 하는 동안 입었던 옷이 어떠했건 15살의 소년에 불과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바깥에서 어떠한 생활을 했건 집으로 되돌아와야한다. 집은 단지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집이란 내가 평화와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어떠한 것이든 상관이 없다. 사람이 되었건 공간이 되었건 물질이 되었건 그것을 우리는 소유하여야 한다. 이것은 천재던 범인(凡人)이건 공통된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 시험은 대체 어떻게 붙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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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소감
- 개인적으로 종횡무진했던 사기꾼의 직업체험기를 구경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의 대담하고도 뻔뻔한 행세들은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고 공감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내면에는 프랭크 같은 공허함과 고독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솔직히 나에게 있어 집이란 아직 없다. 나에게 평화와 안정을 찾아주는 것은 이런 글을 쓸 수 있고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여유로움이자 시간이다. 나도 남을 만날 때 멋진 유니폼을 입고 나가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 욕구야 당연히 있다. 하지만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이건간에 나를 단지 나로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 곁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다. 물론 나에게 프랭크 같은 재능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재능이 있지 않겠는가.

-스필버그가 이끌고가는 탄력있고 경쾌한 연출력은 지나고 생각해보니 참 경탄스러운거 같다. 어떤 스토리건 결국 이야기꾼이 맛을 살려주는 것 아니겠는가.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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